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삶과 문화] 그곳에 삶이 있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문화] 그곳에 삶이 있다

입력
2012.11.14 11:42
0 0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의 노조가 지난 4월부터 시작한 파업이 200일을 넘어섰다. 사측은 2011년 10월 일방적으로 단체 협약 해지를 노조에 통보했다. 작년 9월 사측은 노조에 '사규위반시 해고', '정리해고 합의에서 협의로 변경' 등의 요구 조건을 내걸며 단협을 요구했고 노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사측은 노조에 단협 해지를 통보했다.

노조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 사항을 걸어 단협을 해지하는 이러한 방식은 사측이 노조를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노조를 와해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의혹을 갖게 했다. 현재 골든브릿지 노조는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는 개악안을 철회하고 부당 경영과 부당 노동행위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

골든브릿지 노조는 사무직노조다. 이 노조가 설립된 해는 1987년이다. 1987년은 한국에서 민주노조 운동의 기점이 된 해다. 그때 제조업, 비제조업 할 것 없이 모든 노동자들은 거대한 민주노조의 물결에 참여했었다. 그러나 IMF 경제 위기 이후 민주노조 운동의 성과들이 하나하나 허물어지고 있다. 경제의 회생, 기업의 회생을 기원하는 희생제의에서 가장 먼저 제단에 바쳐지는 제물은 바로 노동자였다. 그리고 노조는 이를 방해하는 거추장스런 집단으로 인식되었다.

조직력과 교섭력에 있어서 노조는 제조업이건 비제조업이건 과거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무력해진 상황에 처해 있다. 그리고 실제로 '심각한 위기에 빠지지 않은' 기업들조차 위기 상황을 연출하고 조장하여 노조를 무력화시키고 노동자를 해고하는 전략을 일삼게 됐다. 마치 대한민국에서 이념탄압이 6.25 한국전쟁의 악몽을 상기시키며 정당화되어 왔듯이 현재의 노조탄압은 IMF 사태의 악몽을 상기시키며 정당화되고 있다.

과거에 "당신은 노동자인가?"라는 질문은 "당신은 블루칼라인가?", "공장에서 일하는가?"라는 질문과 같은 말이었다. 민주노조 운동은 이러한 상식을 문제 삼았다. 민주노조 운동은 조직의 이익이라는 명분으로 불편과 희생을 감수해온 모든 피고용자들을 노동자로 명명했다. 나아가 민주노조 운동은 노동자를 자신의 행동과 목소리를 통해 조직과 사회 모두의 발전과 정의에 참여하는 당당한 주체로 명명했다.

그런데 IMF 이후 민주노조 운동의 성과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노동자'라는 말의 어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다시금 '근로자'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노동자라는 말은 심지어 블루칼라조차 아니게 됐다. 노동자는 '위기에 처한 집단'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노동자와 가장 밀접하게 결부된 단어는 이제 평등과 정의가 아니라 '희생'이다. 요새 사람들이 "나는 노동자가 아니에요"라고 말할 때, 그것은 "나는 희생자가 아니에요"라고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사무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노동자들의 농성과 파업투쟁 장에서 단순히 희생자의 요구사항만 듣지 않는다. 나는 거기서 희생자로 전락하지 않겠다는 목소리, 평등과 정의를 부르짖는 목소리를 듣는다. 그들은 노동자들을 희생자로 전락시키는 자본의 독주를 노사관계를 넘어선 공적 의제로, 인간적 삶의 문제로 전환시키고 있다. 그들은 인간선언을 하듯 송전탑에 오르고 한 달이 넘게 단식을 하고 있다. 그 싸움들은 그래서 언제나 비참하면서 동시에 영웅적인 풍모를 지니고 있다.

얼마 전 골든브릿지 노조 농성장을 방문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지인을 만났다. 그는 내게 충격적인 소식을 들려줬다. 최근 자신의 회사에서 대규모 희망퇴직이 있었고 같은 회사에 근무하다 최근 회사를 옮긴 한 친구는 과로사로 사망했다고 했다.

그가 내게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묻기에 나는 손가락으로 길 건너 인도에 골든브릿지 농성장을 가리켰다. 나는 그와 헤어지며 "죽지 말아요"라고 말했다. 내가 그에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여준 그 곳, 노동자들이 파업 중인 그 곳, 그 곳을 지나는 시민들이 결코 자신들과 동일시하지 않을 사람들이 점거하고 있는 그 거리가 내게는 오히려 삶이 넘치는 장소처럼 보였다.

심보선 시인 경희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