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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열며] 수능시험 날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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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열며] 수능시험 날의 단상

입력
2012.11.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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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정

서울 북공고 교사

입시, 수능시험의 세계는 냉혹하다. 완벽한 제로섬게임의 세계다. 따는 사람이 있으면 잃는 사람이 있고, 한 쪽의 승리가 다른 쪽의 패배로 이어지는 제로섬게임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다. 내 자식의 성적이 오르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의 성적이 내려가야 하고, 우리 학교의 성적이 오르면 반드시 다른 학교의 성적이 내려가야 하는 세계다.

이러한 입시의 세계에선 내 자식 잘되라고 노력하는 것은 다른 집 자식 잘못되라고 노력하는 것과 같다. 교사와 교장이 자기 학교 학생들의 좋은 성적을 위해 노력했다면 그들은 사실상 다른 학교 학생들의 성적을 망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자기 교육청 학생들의 높은 성적을 위해 기도한 교육감은 사실상 다른 교육청 학생들의 나쁜 성적을 위해 기도한 것이다. 한 쪽의 승리가 다른 쪽의 패배로 이어지고 한 쪽의 경사가 다른 쪽의 애사로 이어지는 세계가 바로 수능시험의 세계다. 그러므로 수능시험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응원한다면 그것은 다른 누군가의 패배를 외치는 행위이다.

하지만 현실 속의 우리는 누군가를 응원하고 누군가를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내 자식, 우리 학교 학생, 내 지역의 학생들을 더 많이 응원하고 그들을 위해 더 많이 노력할 수밖에 없다. 나 또한 항상 그렇게 행동해 왔다. 내 자식만은, 우리 학교 학생들만은, 우리 지역 학생들만은…. 이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무도 자연스러운 이 인간적 감정이 입시를 지옥으로 만드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학생과 학생, 학교와 학교, 교육청과 교육청의 성적 경쟁을 심화시키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과 학부모 한 명 한 명에게는 입시경쟁에서 승리하고자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일 수 있다. 각각의 학교, 각각의 교육청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태만이고 나태일 수 있다. 노력하면 할수록 입시는 더 잔혹한 지옥으로 변하겠지만 그렇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책임한 행위다. 학생, 학부모, 교사, 교장, 교육감은 이 딜레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이 딜레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정부와 교육부뿐이다. 정부와 교육부 차원의 최종 입시 성과는 항상 제로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학생, 각각의 학교, 각각의 지역이 받은 시험성적은 서로 상쇄되어 결국 제로가 된다. 만약 대통령이나 교육부장관이 모든 수험생들을 향해 시험을 잘 보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수험생이 시험을 잘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입시의 세계에서 모든 수험생이 시험을 잘 보았다는 건 모든 수험생이 시험을 망쳤다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그러니 정부와 교육부 차원에서는 학생들의 입시성적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결국 정부와 교육부만이 학부모, 교사, 교장, 교육감이 처한 딜레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점에서 교육부의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교육부가 없어지면 자칫 한국의 입시지옥은 지금보다 더 나쁜 지옥으로 변할 수 있다. 물론 교육부는 그동안 입시의 고통을 완화하는 역할을 제대로 못해왔다. 오히려 심화시키기도 했다. 국민의 실망이 커서 교육부의 폐지나 축소를 주장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나 또한 감정적으론 교육부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생각만 해도 통쾌하다.

하지만 교육부의 축소나 폐지를 교육문제의 중요한 해법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핵심을 잘못 짚은 것이다. 해법은 교육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게 만드느냐에 있다. 즉 어떻게 하면 교육부를 교육부답게 만들 것이냐에 있다. 대선후보들이 이에 대해 어떤 해법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글에서 교육부는 교과부를 잘못 지칭한 말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교육부란 말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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