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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을 게임폐인으로 살며 느낀 집합지능·민중의 선함 말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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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을 게임폐인으로 살며 느낀 집합지능·민중의 선함 말하고 싶어”

입력
2012.11.13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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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이야기는 수없이 반복10만명 이상이 공감하는 주요 모티프는 205가지 정도글쓰기 도구 스토리헬퍼 이용 신개념 문학에 새로운 도전게임 폐인으로 산 지난 8년 느낀점 소설로 말하고 싶었죠"

밀리언셀러 등 한국형 팩션으로 인기를 모았던 이인화(46ㆍ본명 류철균) 이화여대 대학원 멀티미디어학부 교수가 8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해냄 발행)를 냈다. 스릴러, 판타지, 추리, SF 장르를 혼종한 새로운 형식의 이 소설은 2003년부터 이씨가 개발하고 있는 '스토리헬퍼'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집필했다.

이씨는 13일 기자들과 만나 "PC가 이미 올드미디어가 돼 버릴 만큼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소설이 읽힐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 작품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의 화제는 새 소설보다 오히려 그가 만들고 있다는 글쓰기 도구 스토리헬퍼 쪽이었다. 그는 "오늘날 독자는 이미 머리 안에 1만 종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며 "새롭고 다른 이야기를 쓰는데 도움이 되고자 스토리헬퍼 프로그램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쉽게 말해 디지털 스토리텔링 저작 도구다. 기존의 유명 소설, 영화, 게임 등에서의 에피소드 3만4,000여 개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작가가 쓰고자 하는 신작의 모티프를 비교하는 프로그램이다. 창작자가 쓰고자 하는 에피소드가 있을 경우,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사건을 어떻게 경험하는지를 묻는 객관식 설문에 대답하면, 그 에피소드와 최대한 비슷한 기존의 작품과 닮은 비율이 나온다. 작가가 굳이 이야기를 쓰고 뒤집는 수고를 덜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인 셈이다.

이씨는 "10만명 이상이 '내 문제야'라고 공감하는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205가지"라며 "이 모티프를 수사적, 논리적, 역사적으로 변형해 얼마나 독창적으로 만드냐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소설, 영화, 게임 등 스토리텔링 콘텐츠가 대중에게 새롭게 호소할 수 있는 방법은 '햄릿' 같은 불멸의 캐릭터, 각 시대에 대한 작가의 독창적인 재해석이라는 것이다. 너무 닮으면 지겹고, 기존 서사와 너무 다르면 독자가 공감하지 못하는 법이다. 스토리헬퍼로 비교한 결과, 영화 '아바타'와 '늑대와의 춤을'의 싱크로율은 87%, 영화 '라이언일병 구하기'와 '스타워즈 에피소드 4'의 싱크로율은 80%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쓴 신작 는 일반인보다 10배 이상의 지능을 가진 강화인간과 범국가적 조직을 배후로 둔 살인사건의 추적 과정을 그린다. 이 작품과 닮은꼴의 소설은 필립 K 딕의 '유빅'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소설이지만, 이씨는 싱크로율 55%미만의 에피소드들만 택했다고 한다.

소설은 대구의 한 호텔에서 의문의 변사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베테랑 수사관 김호는 혐의자로 체포된 중국인 자오얼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사건의 배후에 보통 사람보다 10배 이상의 지능을 가진 일명 '강화인간'이 있음을 알게 된다. 피살자 이유진 역시 지능강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강화인간. 이들은 공생당이란 비밀 조직을 결성해 사회 개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었다. 소설은 배후를 좇으며 유진이 만든 최면 세계 '인페르노 나인'과 이 세계에서 선과 악으로 나뉜 강화인간들의 복잡다단한 갈등을 펼쳐 보여준다.

그런데,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시뮬레이션을 거친 소설을 작가의 창작물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이씨는 "제임스 조이스처럼 인간의 심오한 내면의 세계를 파고드는 예술의 세계가 있었지만 지금 시대에는 매체가 요구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며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작가가 아니라 콘텐츠 사용자인 시대"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는"이야기꾼은 완결된 이야기를 통해 독자의 인생에 뭔가 조언을 주거나 도움을 준다"며 "소설로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지난 8년간 게임 폐인으로 살면서 느낀 점"이라고 "아날로그세대 작가"의 모습을 내비치기도 했다.

"리니지의 '바츠 해방 전쟁'을 하면서 인간의 집합지능이 어떤 인공지능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민중의 선함을 알게 됐죠. '내가 죽을 테니 너는 살아라'는 수백만 번의 자기희생과 헌신이 1년 동안 지속돼 게임에서 승리했어요. 아주 제약된 상태에서나마 성자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선함을 실천하고 싶은 걸까. 이씨는 스토리헬퍼 프로그램을 2013년 3월 무료로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게임에서 받은 감흥을 소설로 끝내지 않고, 소설 줄거리를 바탕으로 그가 만든 게임 '인페르노 나인'도 이달 중 출시한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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