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친구가 마니산에 소개하고 싶은 '여도사'가 있다고 해서 가게 되었다. 강화군 온수리의 산 입구에서 반시간쯤 걷다보니 부스러진 기왓장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폐허가 나타났다. 한쪽에 '천제암 궁지'라는 안내판이 서 있었는데, 단군왕검이 참성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제기와 제물 등을 준비하던 '제궁터'다. 그 옆 산길을 10여m 올라가니 슬레이트 지붕의 조그마한 움집이 나타났고 한 중년 부인이 우리를 맞이했다. 나는 그녀에게서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녀는 인천에서 남편과 함께 건설업을 하던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런데 20여년 전부터 시름시름 아팠다. 꿈에서는 산속의 폐허와 움집, 단군할아버지 같은 이미지들이 나타나고, "너는 그 곳을 찾아 가야 산다!"는 환청이 들렸다. 병원과 한약과 민간요법 등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도 병이 낫지 않았다. 안수기도도 받고 법회도 열고 굿도 했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다. 몸은 쇠꼬챙이처럼 말라가고 거의 죽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할 수 없이 꿈속에 나타난 폐허를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참성단에서 기도를 하고 내려오다가 자신도 모르게 발길에 끌려 그 움집에 오게 되었다. 바로 꿈속에 봤던 곳이었다.
쓰레기와 오물로 가득 찬 움집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방 안에 한 번도 쓰지 않고 비닐로 곱게 포장해 놓은 자개장롱과 경대가 있었다. 그녀 말에 따르면 자개장롱과 경대는 그 움집에서 수도하던 '할아버지 도사'가 자신을 위해 남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는 자기가 죽은 후 이곳을 단군성지로 일으킬 여도사가 나타날 것이라며 장롱과 경대를 미리 사 놓고 그 속에 단군성지의 조감도와 편지 등을 남겨 놓았다는 것이다. 장롱과 경대는 방안에 있으니 내 눈으로 확인을 했지만 도사가 남겨줬다는 조감도와 편지를 보여 달라는 건 초면에 실례인 것 같아 보지 못했다.
그녀는 그 움집에 오자마자 너무도 마음이 편안해져서 그곳에서 살기 시작했다. 꿈속의 신령들과 교류하며 참성단에 오르고 기도하며 지내는 동안 그녀의 몸은 건강해지기 시작했다. 말랐던 몸에 살집이 붓고 혈색도 돌아왔다. 산 아래 마을에서는 그녀를 미친 여자나 귀신들린 무당 취급을 하며 멀리했다. 그런데 점을 치거나 굿을 하지도 않고 그저 순수하게 단군신을 모시고 지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 그녀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녀의 꿈은 천제암 궁지 폐허를 복원하여 단군성지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문화재 관리를 담당한 군청을 수없이 찾아가서 복원해주기를 청했지만 예산 타령만 할 뿐 진척이 없었다. 이제 그녀는 스스로 그 일을 하려고 일심으로 기도를 하며 지낸다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참으로 큰 혼란에 빠졌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눈앞에서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미화하거나 신격화하지 않았다. 자기는 단군교도 아니고 증산교도 아니고 사이비 교주도 아니라고 했다. 전국 각지에서 무당이나 스님이나 도사들이 기도를 하러 그곳을 찾아오지만 그들과도 별로 교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중에는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고 잡귀잡신에 들려서 허무맹랑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바르지 못한 마음으로 사술을 부리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그녀는 그저 신들의 뜻을 받들고 사는 무식한 여자라고 자신을 표현했다. 여도사와 헤어져 산을 내려오는 내내 과연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의문에 휩싸였다. 친구는 그녀가 이루려고 하는 단군성지의 꿈을 알리고 싶어서 나를 소개한 거였지만 나는 아직 그녀가 모신다는 단군신에 대해서도 궁금한 게 많다. 과연 5,000년 전의 단군은 어떤 존재였기에 한 여성을 10년 동안이나 산속에 잡아두고 있는 걸까? 만약 여도사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단군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가 되길 원하는 걸까? 이처럼 많은 의문을 간직한 채 돌아 온 나의 귀에는 헤어질 때 들려 준 그녀의 말이 맴돌고 있었다. "신령들하고 노는 건 차라리 쉬운데, 인간들과 지내는 게 훨씬 더 어려워요."
동양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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