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긍지 / 우리의 눈물 / 평등의 땅에/ 맘껏 뿌리리 / 평등의 땅에 / 맘껏 뿌리리'('저 평등의 땅에')
전두환 노태우 군사 정권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 민주화운동의 앞줄에 서서 힘 있고 청아한 목소리로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던 가수가 있었다. 민중가요의 명곡들을 만들었던 노래패 '새벽'의 윤선애(48)다. 운동권에선 안치환 김광석보다 더 유명했던 그는 '저 평등의 땅에' '벗이여 해방이 온다' '그날이 오면' '민주' 등 이른바 '민중가요'의 대표곡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군인들의 독재가 끝나면서 대중 앞에 서는 윤선애의 모습도 뜸해졌다. 앨범은 단 두 장. 한 장의 미니앨범(2005)과 자선 앨범(2009)을 냈다. 크고 작은 공연에 참여했지만 단독 콘서트는 단 두 번(1993, 2010)뿐이었다.
지난달 초 세 번째 앨범 '윤선애 2012'를 낸 그가 다시 무대에 오른다. 이전 두 번의 공연의 연장선상에 있는 '윤선애씨 어디 가세요 3'라는 제목의 콘서트다. 국내 포크 음악 1세대로 불리는 김의철이 지난 자선앨범에 이어 윤선애와 함께 음반을 만들고 콘서트 연주도 맡는다. 9일 전화로 만난 윤선애는 새 앨범에 대해 "새들 노래 소리나 바람 소리 같은 자연의 울림을 닮아가는 노래"라고 소개했다.
1993년 새벽 해체 후 그는 "먹고 사는 데 집중하느라 바빴다"고 했다. 3년간 교사 생활을 하다 음악을 더 공부하겠다는 생각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가 전통음악인 '정가'를 공부했다. 대중 가요로 길을 선회할 수도 있었지만 "내 자리가 아닐 거라는 생각"에 애초부터 문을 두드리지도 않았다. 생계를 위해 전공을 다시 살렸다. 서울대 84학번 지구과학교육과 출신인 그는 15년간 같은 입시학원에서 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사범대 출신이라 그런지 아이들 가르치는 게 재미있다"며 웃는 목소리에 여유와 생기가 새어 나왔다.
음악에 대한 고민은 새벽 해체 후 더욱 커졌다. 선배들이 진보적인 생각을 음악에 담기 위해 민족음악을 택하던 때였다. 판소리처럼 성대를 쓰지 않아도 노래를 잘 할 수 있는 장르인 정가가 어떻겠냐는 한 선배의 추천을 따랐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아야 부를 수 있는" 정가를 배우고 그는 자연을 닮은 소리에 더욱 가까워졌다.
김의철과는 2005년 '하산'을 내고 난 뒤 만났다고 했다. 윤선애의 공연을 본 그가 먼저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한 것이다. "그 당시(80년대) 활동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사는 것도 힘들고 마음이 공허할 것 같아 나 자신도 위로하는 의미에서 사람들을 따뜻하게 안을 수 있는 노래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힘이 넘치던 예전 노래와 달리 소박하고 잔잔한 포크 음악을 부르게 된 이유다.
윤선애의 20대 시절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팬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대도 바뀌었고 가수도 팬들도 모두 중년의 나이가 됐다. "젊었을 땐 분노와 열망을 실어서 열정적으로 불렀죠. 그땐 힘이 있었잖아요. 나이 들어서 계속 그런 창법으로 부르는 건 곤란해요. 나이를 먹을수록 편안하게 불러야 듣는 사람도 저도 부담이 없죠."
17일 오후 3시, 6시 30분 경기도 고양아람누리에서 두 차례 열리는 이번 공연은 지난 두 차례의 콘서트처럼 인터넷 팬카페 회원들이 힘을 모아 마련했다. 앨범 수록곡들은 물론 '5월의 노래' '민주' 등 새벽 시절 노래들도 부를 예정이다. "이번 공연에선 전쟁을 경험한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을 보듬고 상처를 위로해주는 노래들을 부르려고 해요. 관련된 노래도 있고 간단한 영상으로 메시지를 전해드릴 겁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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