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프로배구에 '공포의 외인구단' 경계령이 내려졌다.
지난 시즌 KEPCO는 2005년부터 V리그에 참가한 이래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다. 승부 조작의 직격탄을 맞아 주전 대부분의 선수가 전열에서 이탈했다. 가까스로 창단 후 첫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현대캐피탈에 2연패로 무너졌다.
설상가상으로 시즌이 끝난 뒤 최고의 유망주로 손꼽히던 왼손잡이 레프트 서재덕이 무릎 수술을 받았고, 시즌 막판 활력소를 불어넣었던 조현욱마저 어깨 수술로 빠졌다. 센터 최석기도 무릎 부상 이후 재활 중이다.
선수 부족으로 밤잠을 못 이루던 신춘삼 KEPCO 감독은 올 시즌만 대한항공에 하경민을 내주고 장광균과 신경수를 임대 형식으로 받는 1대2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이어 지난달 22일 열린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5명의 선수를 충원했다. 개막을 불과 보름 여 앞둔 10월 중순, 세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던 신 감독은 수 차례 러브콜 끝에 2011년 프로에서 은퇴한 뒤 실업 팀 화성시청에서 뛰고 있던 올해 서른다섯의 노장 세터 이동엽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KEPCO의 '베스트 6'를 보면 30대 베테랑 선수들과 젊은 선수들이 섞여 있다. 한 차례 은퇴를 했다가 복귀한 경험이 있는 센터 방신봉은 서른일곱으로 팀내 최고참이고, 센터 신경수, 리베로 곽동혁, 세터 이동엽을 비롯해 레프트 장광균, 김진만 등 그야말로 '공포의 외인구단'이다.
KEPCO는 3일 대전에서 열린 디펜딩챔피언 삼성화재와의 2012~13 시즌 개막전에서 1세트를 따냈지만 아쉽게 1-3으로 역전패를 당했다. 경기 후 삼성화재 관계자들은 "KEPCO가 예상보다 강해서 깜짝 놀랐다. 하마터면 질뻔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정도였다.
KEPCO는 2연패 뒤 11일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홈 개막전에서 러시앤캐시를 상대로 풀세트 접전 끝에 승리를 거뒀다. 이 경기에서 신인 세터 양준식(21)과 지난 4월 상무에서 제대한 김진만의 활약이 돋보였다.
신 감독은 양준식에 대해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세기가 떨어지지만 센스가 있고 배짱이 있다. 조금만 가다듬으면 대성할 것이다"고 극찬했다. 비교적 작은 키(188cm)에 속하는 레프트 김진만은 높이의 한계를 빠른 스피드로 극복하면서 팀 공격을 이끌고 있다.
한국형 용병으로 불리는 안젤코도 자신을 희생하면서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그는 "모든 팀들이 우리를 최하위로 꼽았기 때문에 더욱 오기가 생긴다"면서 "개인 기록은 의미가 없다. 매 경기 승리할 수 있도록 100%의 힘을 다 쏟아내겠다"고 강조했다.
시즌을 앞두고 대부분의 전문가들로부터 최하위로 평가된 KEPCO 선수들은 독기를 품고 똘똘 뭉치면서 경기력을 서서히 끌어 올리고 있다.
1라운드 5경기 중에서 3경기를 치른 KEPCO는 현재 1승2패를 기록했다. 총 6라운드로 진행되는 이번 시즌에서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신 감독은 자신감을 드러냈다. "경기 승패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이 조금씩 호흡을 맞추다 보면 1승씩 계속해서 쌓아갈 수 있을 것이다"라며 "기세를 몰아서 이번 라운드에서 적어도 2승은 해야 할 것 같다"고 웃었다.
이재상기자 alexe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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