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배임죄는 '경제민주화'의 핵심조항. 각 후보들은 재벌총수의 횡령ㆍ배임죄에 대해선 반드시 징역형을 선고하고, 형량도 대폭 확대하는 법안을 내놨다.
하지만 여기엔 반론도 많다.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자의적 법 적용 탓에 오히려 기업의 투자활동을 위축시키고 기업인을 범죄자로 내몬다는 지적이 재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경제법학회가 9일 개최한 추계학술세미나에서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법에 '적법 절차에 따른 경영판단 행위에 대해서는 배임죄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사의 이사나 임원이 '선의(good faith)'에 의해 임무를 수행했을 때는 비록 그 판단이 나중에 회사에 손해를 끼치더라도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현행 배임죄에 대해선 모호하다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형법 제355조(횡령, 배임)와 제356조(업무상 횡령과 배임)에서 죄 성립 여부를 결정하는 주된 근거는 '고의성'이다. 의도적으로 타인에게 이득을 보게 하거나 손실을 입힐 의사가 있었는지가 핵심인데, 문제는 고의성에 대한 해석이 자의적이라는 데 있다. 업무상 배임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경영상 판단으로 보느냐의 논란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배임죄에 대한 판결은 종종 엇갈린다. 우선 2004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대한보증보험 전 대표의 경우. 그는 1996년 한보철강 회사채 399억원에 지급보증을 섰다가 회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배임죄로 기소됐는데, 대법원은 "경영자가 기업이익에 합치된다는 믿음을 갖고 결정한 사안까지 형사 책임을 묻는다면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와 반대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지난 8월 배임죄로 법정 구속됐는데 1심 범원은 "회사에 이익이 될 것이라는 일반적, 추상적 기대 아래 손해를 입힌 경우는 경영판단의 재량 범위라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 이후 재계에선 "이런 식으로 배임을 걸기 시작하면 살아남을 기업인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우리보다 앞서 배임죄를 명문화한 독일과 일본은 죄목 구성요건이 비교적 제한돼 있다. 독일은 배임죄 주체를 '법률 또는 관청의 위임, 법률행위 혹은 신임관계'로 한정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타인의 사무처리자'로 규정해 범위가 상대적으로 넓다. 또 일본은 명백히 손해를 가할 목적이 있어야 배임죄가 성립하지만, 우리는 손해 발생의 위험만 있어도 배임죄 요건에 포함된다.
최 교수는 그렇다고 형법상 배임죄 폐지가 쉽지는 않은 만큼 상법에 관련 조항을 삽입하자는 절충안을 내놨다. 도입 50년이 지난 형법상 배임죄는 사기죄나 횡령죄를 대체하는 기능을 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완전 폐지는 어렵고, 대신 형법상 배임죄의 특칙으로서 상법상 '특별배임죄'를 손질하면 어느 정도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구체적으로 ▦상법 제382조(이사의 선임, 회사와의 관계 및 사외이사) 2항에 '이사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회사의 이익을 위하여 경영상의 판단을 한 경우에는 의무의 위반으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거나 ▦상법 제622조(발기인, 이사 기타의 임원 등의 특별배임죄)에 '경영판단 행위일 경우, 배임죄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최 교수는 "현행 배임죄 조항을 그대로 두고 해석에만 매달리면 수많은 판례가 쌓여야 해결책이 도출되는 만큼 입법적 개선이 최선의 대안이라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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