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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의 애고에코] 침묵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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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의 애고에코] 침묵의 봄

입력
2012.11.1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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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여성 과학자를 꼽으라 하면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퀴리 부인'의 이름을 들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라는 명성뿐 아니라, 어린이들의 교과서나 위인 전집에 퀴리 얘기가 자주 언급된 까닭이리라.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레이첼 칼슨'도 이에 못지않은 대표적 여성과학자라 생각된다. 특히 우리가 '여성'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는다면 말이다. 최근에 대선 후보를 둘러싸고 '여성성' 논란이 불거진 시점에서 칼슨 여사의 삶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잘 알려진 바처럼 칼슨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이라는 책을 집필한 저자다. 칼슨 여사는 이 책에서 생태계 연구의 중요한 발견 중 하나인 '생물농축'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람들은 술을 엄청나게 마시지만 병으로 발전할 정도만 아니라면 대부분 몸에 알코올이 남아있지 않다. 그 이유는 술은 물에 녹는 '수용성'이라 몸에서 분해도 되고 땀이나 소변으로 쉽게 배출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물에 녹지 않고 지방에만 녹는 '지용성' 물질의 경우에는 생물체 몸 안으로 소량만 들어와도 몸 속 지방에 차곡차곡 쌓이다. 또 생태계에서는 '먹이망'을 통해서 식물플랑크톤은 동물플랑크톤에게, 또 이들은 작은 벌레, 물고기, 큰물고기 등을 거쳐서 새나 더 큰 동물에게 잡아 먹히는 순차적인 관계가 존재한다. 이런 지용성 물질들은 각 먹이 단계에서 계속적으로 농축되기 때문에 먹이망의 위로 올라갈수록 생물들은 고농도 지용성 물질을 먹게 된다. 이런 대표적인 지용성 물질이 농약을 비롯한 대다수의 합성 화학 물질이다. 이 책에서 다룬 DDT라는 화학물질은 원래 해충 방제를 위해 사용한 약이다. 과거 미국에서는 공중에서 비행기를 통한 대규모 살포가 이뤄졌다. 인간에게 직접적인 해가 없다는 이론과 벌레들은 모두 박멸해야 한다는 공격성이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물농축을 통해 DDT는 새의 몸에 높은 농도로 쌓이고, 그 부작용으로 새알의 껍질이 얇아져 결국 봄이 되어도 새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다는 경고를 이 책은 담고 있다.

칼슨 여사는 대학에서 해양생물학 석사학위를 받긴 했지만 이 화학물질을 직접 분석한 과학자는 아니다. 그보다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과학책 집필로 유명해졌다. 그녀의 능력은 어려운 과학적 발견을 대중 특히 가정주부까지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아름답고 강력한 필치로 표현한 점이다. 그보다 더 주목할 점은 그녀가 가난한 환경을 극복하고 성장했으며, 수많은 병마와 싸우며 자신의 일을 수행했다는 점이다. 또 이 책이 나오면 벌어질 소동을 예상하면서도 인류 전체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이 위험을 꼭 알려야 한다는 큰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예상대로 책이 나오자마자 재벌 화학 회사와 이들의 지원을 받는 과학자들의 공격, 비판 그리고 소송에 시달렸다. 이 비난들 중에는 칼슨이 살충제 사용에 반대하여 벌레가 창궐케 하고 이를 통해 미국의 농업 생산성을 낮추려는 소련의 음모에 따라 책을 집필한 '빨갱이'라는 것도 있었다. 미국에서 50년 전에 있었던 이런 유치한 비난이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세세한 부분의 오류에 대한 계속되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침묵의 봄은 여전히 선진국 대학에서는 현대 환경문제의 이해를 위해 꼭 읽어봐야 할 고전으로 손꼽힌다. 이 책을 통해 환경과 생태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혁명적으로 변화했고, 미국 환경청 신설이나 다양한 환경법령의 제정도 이루어 졌다. 어떤 이는 아직도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칼슨 여사의 책 때문에 DDT 생산이 중단되어 아프리카의 말라리아가 번창했고, 이 때문에 죽은 사람의 수가 히틀러가 학살한 사람의 수보다 많다고 말이다. 만일 누군가가 항생제의 오남용이 위험하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항생제 부족으로 아프리카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고 되묻고 싶다.

칼슨 여사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출산의 경험도 없었다. 그러나 고아가 된 친척 아이를 양육했으며, 여성성의 상징인 가슴을 수술로 제거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뛰어난 필치로 큰 업적을 남겼다. 뛰어난 여성은 남성적인 공격성이나 생물학적 특성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는 칼슨 여사가 보여준 바와 같이 약자에 대한 이해와 고려, 자연에 대한 경외와 조화, 그리고 힘들 줄 알면서도 옳은 일을 실천하는 행동이 진정한 여성성의 표상일 것이다.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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