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바오(溫家寶) 중국 국무원 총리가 당과 국가의 지도자(영도ㆍ領導)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며 정치 개혁의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27억달러(약 3조원)의 축재 의혹설을 받고 있는 그는 "반(反)부패 문제에 당과 국가의 생사존망이 달렸다"며 오히려 보수파를 겨냥, 반격에 나섰다. 이 발언이 당 내에 파문을 일으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하루 늦게 보도된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신화통신은 원 총리가 8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 보고 후 톈진(天津)시 대표단 분임 토론회에 참석, 향후 5년간 특별히 중시해야 할 과제로 3가지를 제시했다고 9일 오후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그는 먼저 "경제 발전을 통해 수입을 증가시키면서 도농 및 지역간 격차를 줄이고 수입과 분배의 불공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 총리는 또 "반부패는 당과 국가의 생사존망과 직결된 문제로 중시해야 한다"며 "간부의 청정(淸正), 정부의 청렴(淸廉), 정치의 청명(淸明)을 이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특히 "당과 국가의 지도자 제도를 개혁, 민주를 발전시키고 법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는 차기 지도부를 결정하는 당 대회 기간 중 현행 지도부 선출 과정의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해석돼 주목된다.
원 총리의 발언이 하루가 지난 9일 오후에야 관영 매체들을 통해 보도된 것은 다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의 동정이 모두 당일 전해진 것과 대비된다. 실제로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위원장이 안후이(安徽)성, 자칭린(賈慶林) 정협 주석이 베이징(北京)시, 리창춘(李長春) 상무위원이 쓰촨(四川)성,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이 상하이(上海)시, 리커창(李克强) 부총리가 산둥(山東)성, 허궈창(賀國强) 상무위원이 푸젠(福建)성, 저우융캉(周永康) 상무위원이 신장(新疆)자치구 분임 토론에 각각 참여한 사실은 8일 바로 보도됐다. 이 때문에 한 때 베이징 정가에선 원 총리의 입지에 변동이 생긴 것 아니냔 분석도 나왔다.
평소 정치 개혁 목소리를 높여온 원 총리는 최근 가족의 거액 축재 의혹이 뉴욕타임스(NYT)를 통해 보도돼 정치적 궁지에 몰린 상태다. 그러나 NYT 보도는 원 총리에 반대하는 보수파의 정치 공작이란 시각도 없지않다. 특히 원 총리는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서기를 공개 비판하며 정치 개혁을 늦춘다면 문화대혁명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 보수파의 반발을 사 왔다. 한 소식통은 "당 대회 중에도 정파간 권력 투쟁이 치열한 듯 보인다"고 말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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