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어 부스럼'처럼 보인다. 광화문의 현판을 한자로 하느냐, 한글로 하느냐를 두고 또 다시 토론과 논쟁을 벌이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광화문 현판 글씨는 이미 2년 전에 결론이 내려졌다. 경복궁 복원정비사업에 따라 광화문을 원래 위치로 복원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한글 현판 대신, 1865년 중건 당시 공사감독관이자 훈련대장이었던 임태영이 한자로 쓴 현판으로 교체했다. 친필 현판이 한국전쟁 때 사라져 유리 원판 사진을 찾아서 복원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의견이 분분했다. 조선 최고 명필가의 글씨로 하자, 정조의 글씨를 집자(集字)해 사용하자, 보기 좋고 외국인들까지 읽기 쉬운 한글로 하자. 그러나 정부는 광화문을 145년 전의 모습 그대로 복원하면서 현판만 엉뚱한 글씨로 달 수는 없다는 원칙을 따랐다. 조선 왕실의 정궁인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의 현판은 거리 간판이나 기업의 CI와는 다르다. 그 자체가 하나의 소중한 역사다. 시대와 가치관에 따라 후세가 함부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최준호 한예종 교수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그는 라틴어나 고어(古語)를 그대로 살리는 프랑스의 문화재 복원을 언급하면서 "문화재 복원은 미학, 언어, 사회적인 고려하에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기에 만들어 놓은 그 자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고 했다. 현판을 한석봉이나 정조의 명필로 바꾼다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자랑하는 훈민정음 해례본이나 언해본의 글씨체로 바꾼다고 광화문의 역사적 가치와 자부심이 커지는 것도 아니다.
■이번에 현판을 교체하는 이유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고증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현판에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더 튼튼한 나무로 만들어 달면 된다. 그런데 문화재청이 새삼 현판글자까지 들고나왔다.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2년 전과 마찬가지로 두 차례 토론회에서도 한자와 한글의 팽팽한 대립만 확인했을 뿐이다. 광화문 현판 글씨를 여론이 좌우해서는 안 된다. 자칫 여론에 영합하다가는 역사복원의 소중한 원칙마저 무너진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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