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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책] 애착 이면의 그리움 뭔지 모를 뭔가가 그리울 때 펼쳐보게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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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책] 애착 이면의 그리움 뭔지 모를 뭔가가 그리울 때 펼쳐보게 되는 책

입력
2012.11.09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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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을 향한 모든 애착의 뿌리는 그리움이 아닐지. 어릴 적 즐겨 먹던 주전부리나 옛 교정, 사춘기에 읽은 허름한 성장소설, 첫 소개팅 카페에서 설렘과 떨림 속에 듣던 팝송 한 자락. 또 스쳐간 낯선 이의 잔향에 끌려 되돌아본 인파 속에서, 안타깝게 멀어져 이미 잊힌 줄 알던 이의 뒷모습이라도 보게 될까 저도 몰래 발을 돋우게 되는 순간. 그 원형질적인 그리움은 미련이라기보다 용케 기억으로 남은 지난 애착 자체에 대한 애착인지 모른다. 애착의 현재성에 대한 모호한 알리바이. 그것은 극히 사적인 공간과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다. 애착은 그러므로 나와 누군가가 따로 감당했던 어떤 시간과 공간의 좌표가 우연히 겹칠 때에야 오롯이 공감될 것이다.

은 내가 가장 최근에 만나 애착하게 된, 곁에 두고도 그리워하게 된 책이다. 테드 케라소티라는 미국 작가는 여행 도중 떠돌이 개를 만나 함께 한 생애 한 토막의 이야기를 이 책에 썼다.

그는 자신의 어린 골든 리트리버에게 '멀(Merle)'이라는 점잖은 이름을 지어준다. "(멀은) 내 곁에서 잠을 자면서도 내게 공공연히 애정을 쏟지는 않았다. 핥거나 앞발을 주지도 않았다. 녀석은 아직 강아지였지만 과묵하고 위엄이 있었다. 신뢰는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서 얻어야 한다는 점을 삶을 통해서 배워 알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와이오밍주 그랜드티턴 국립공원 속 작은 마을. 평온하지만 단조로울 수 있는 작가의 삶은 멀과 더불어 매혹적으로 변해간다. 겨울 산 엘크 사냥과 스키 여행, 각자의 사랑, 주민들과의 아름다운 에피소드들…. 작가는 멀과 자신이 상대의 행동 패턴과 취향을 살피며 점차 서로의 삶의 내력을 알아가고, 툴툴대고 맞서다가도 이해하고 양보하며 교감하는 과정, 종의 장벽을 넘어서는 우정의 양상들을 세심하게 추억한다.

멀의 따뜻한 털과 오르락내리락 하는 녀석의 갈비뼈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나면, 시간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동차도 소총도 없었고, 오직 멀과 나만이 자기 몸의 피부처럼 느껴지는 곳에 있었다. (…) 우리가 누구인지 잊었다가 기억하기를 반복했고, 그렇게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시간을 넘나들었다.

멀은 인간이 고안한 개 장난감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온갖 흥미로운 생물로 가득한 야생에서 홀로 죽을 고비도 넘겨가며 "가장 원초적이고 매력적인 임무인 생존하는 일에 몰두하면서" 살아와서다. 멀의 자유로운 선택은 작가의 선택과 자주 어긋난다. 가령 밤과 새벽 마실을 즐기는 야생의 멀에게 작가의 문명화한 생체리듬이 따라가기란 버겁다. 현관 밖은 야생이고 심야의 미국 국립공원은 특히 거칠고 위협적이지만 작가는 멀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 결실이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멀의 대문(Merle's Door)'이다. 대문 아래를 따서 멀이 언제든 드나들 수 있는 전용 문을 만들어준 것. "나만의 문. 어떤 언어로 이야기하든, 개에게 그 뜻은 한 가지다. 자유."

멀과 작가의 정서적 교감은, 과장하자면 거의 완결적이다. 사회적 존재라는 인간이 나눠야 할 모든 벅차고 귀한 정서들이 둘 사이에 오간다. 동물행동학자들이 가르쳐온 인간중심적인 개 훈련의 기술 너머에서만 기대할 수 있는 교감. 어떤 관계든 "중요한 것은 요령이 아니라 태도"임을 작가는, 그리고 멀은 증명해나간다.

이 책은 노쇠한 멀의 죽음과 함께 끝이 난다. 멀에 대한 그리움의 기록인 이 책을 펴내고 몇 년 뒤 작가는 멀을 꼭 닮은 강아지 푸카를 입양, 다시 푸카와 죽고 못사는 일상을 소개한 책 (미번역)을 냈다. 애착(푸카) 이면의 그리움(멀), 그 너머의, 뭔지 모를 뭔가가 그리울 때 펼쳐보게 되는 책을 많이 지닌 이들은 행복할 것이다.

최윤필 선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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