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의 집요한 꿈은 아직 실현될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잔존생물(relict)의 모습을 통해 과거로의 시간여행자는 가능하다.
때마침 지구 곳곳을 돌며 꿋꿋이 멸종을 피한 옛 세계의 생존자들을 찾아 낸 ‘시간여행기’가 나란히 번역ㆍ출간됐다. 세계적 사진작가이자 곤충학자 피오트르 나스크레츠키와, 런던자연사박물관 선임연구원 리처드 포티가 지구 진화 역사의 산증인인 잔존생물(이들은 유물생물(relic)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의 모습을 정교하게 재현해냈다.
이들이 궁금증을 풀어내는 방법은 조금 다르다. , 등에 사진을 게재할 정도로 뛰어난 작가답게 나스크레츠키는 아프리카의 모자지 섬, 가나 아트와 숲 등 태곳적 모습을 간직한 오지를 돌며 태초의 생명이 숨 쉬는 찰나를 정교하게 담아냈다. 첨단 촬영기법으로 곤충의 더듬이 털과 나뭇잎의 이슬방울까지 마치 직접 눈으로 들여다보듯 생생하다. 각기 다른 잔존생물과 유물생태계를 고대 지리를 기준으로 소개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공간을 넘나들며 여행 하는 기분이 들 정도다.
반면 박물관 연구원인 포티는 지구 곳곳을 발로 뛰며 숨겨진 진화의 증거물을 수집해 제시한다. 호주 샤크만에서 찾아낸 45억5,000만년 전에 형성된 ‘스트로마톨라이트(미생물의 광합성 활동으로 생긴 끈적끈적한 퇴적 화석)’를 생명 탄생의 비밀을 풀 열쇠로 지목하고, 그 신비를 들려준다. 또 미국 동북부 델라웨어만에서 4억5,000만년 전 고생대 오르도비스키 시대부터 살았던 투구게와 발톱벌레, 해파리 등 진화를 거듭하면서 아슬아슬하게 멸종 위기를 넘긴 생존자들의 곡절을 풀어놓는다.
포티는 특히 인간의 이기심으로 멸종될 위기인 투구게에 애틋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100여년 전만 해도 델라웨어만에서는 투구게를 밟지 않고는 걸을 수 없을 정도였다. 영악한 인간들은 매년 수백만 마리씩 잡아 비료나 돼지사료로 이용했다. 일부는 장어나 물레고둥을 잡는 미끼로 썼다. 1950년대 들어 투구게의 파란 피(혈색소가 대부분 구리여서 파란색을 띤다)가 응고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이 밝혀져 매년 수십억 달러 어치의 투구게가 남획됐다. 투구게 핏속에서 추출한 ‘리물루스 변형세포 용해물(LAL)’로 정맥 내 주사액과 의료용 장비의 독소 오염 여부를 알 수 있다. 주사를 맞거나 심장판막교체수술을 받은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새 LAL의 혜택을 입은 셈이다.
포티는 “지구 역사상 무수히 등장한 종 가운데 90% 이상이 멸종하는 와중에 온갖 사건을 견디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유물생물은 늘 어떤 정보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책에는 화려한 시각자료는 거의 없지만 세밀한 묘사 덕분에 르포를 본 듯 실감난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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