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없어도 되는 세상이 가장 살기 좋은 세상이지만, 재판이나 법률가가 없는 사회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이성보(56ㆍ사법연수원 11기) 서울중앙지법원장이 8일 모교인 서울 신석초등학교를 찾아 6학년생 100여명을 대상으로 진로교육 특강을 했다. 그는 1969년 이 학교를 졸업했다. 서울중앙지법원장의 모교 특강은 처음으로, 학교 측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정치인도 잡혀오고 재벌 회장들도 와서 재판을 받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 법원의 원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법원장은 "범죄나 다툼이 없어서 법률가가 할 일이 없는 세상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적으로 법률가는 꼭 필요한 직업"이라고 강조했다.
초등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발언은 이어졌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는 크게 발전한 건 맞지만, 법과 도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어요. 법원장으로 근무해보니 나쁜 짓을 해서 형사 재판을 받는 사람도 늘어나고,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사람도 점차 늘고 있습니다."
그는 또 "미국의 전자회사 GE에는 소속된 변호사만 1,000여명이고, 삼성에도 변호사가 100명을 넘는다"며 사회가 복잡해 질수록 법률가 수요도 늘어난다는 얘기도 했다.
판사의 처신에 대해서도 비교적 솔직한 입장을 내놓았다. 이 법원장은 "판사가 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도덕성이 특히 높아야 한다"며 "심성이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사람들 사이의 일을 판단하는 일인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재판 중 60대 증인에게 "늙으면 죽어야 한다"고 막말을 해 논란을 빚은 판사 사건을 의식한 발언이다.
그는 자신의 44년 후배들에게 학창 시절 추억을 들려주기도 했다. "'해방'하면 보통 8월15일을 떠올리는데, 저한테는 7월15일이 해방일이었어요.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때는 중학교 입학시험 때문에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선생님한테 매일 매를 맞아가며 공부를 했죠. 그래서 6학년 시절 1학기까지 머리를 싸매고 공부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문교부 장관이 TV에 나와 '오늘 부로 중학교 입학시험을 폐지한다'고 선언하지 않겠습니까? 그 날이 7월15일이었는데, 학생들이 기뻐하며 단체로 운동장에 우르르 몰려나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이 법원장은 "후배들 중에 판사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고, 장래 희망이 판사인 학생은 손을 들어보라"며 개인의 바람도 슬그머니 내비쳤지만 단 한명만 손을 들자 머쓱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는 "요즘은 직업이 다양해진데다 아이돌 가수 같은 직업이 인기가 많아져서 판사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고 했다.
특강을 경청한 신재민(12)군은 "건축설계사가 꿈이었는데 대선배님의 특강을 들으니 판사도 의미 있는 직업인 것 같다"며 "판사와 법원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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