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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위인과 명사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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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위인과 명사의 거리

입력
2012.11.0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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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 그의 재선을 중계하는 시끌벅적한 소식들 앞에서, 나는 생뚱맞게도 문득 인물이란 관념을 떠올렸다. 오바마의 재선은 어쩌면 그의 정치적 비전보다는 그의 독특한 인물로서의 인기에 힘입은 바 큰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물이란 마땅히 본받아야 할 귀감으로서의 인물이거나 아니면 특별한 업적을 통해 세상을 바꾸어 낸 인물과 같은 별난 사람을 이른다. 그 때문에 어린 시절, 읽도록 떠밀렸던 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세계아동문학전집과 항상 짝을 이루던 위인전이다. 아마 어린이책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고 할 위인전은 '성웅 이순신'에서 '헬렌 켈러'나 '슈바이처'로 이어지는 동서고금의 인물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위인전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누가 위인에 해당되는가가 아니라 대관절 특정한 인물을 위인으로 헤아리는 인물에 대한 관념일 것이다. 그것은 특별한 인물이란 무엇인가를 헤아려내는 각 시대의 관점이 어쩌면 그 시대가 무슨 시대인지를 가늠케 해주는 지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위인전은 이제는 그다지 인기가 없다. 그리고 위인전은 새로운 형태의 인물 이야기로 신장개업하여 출현한지 오래이다. 이는 대중문화 속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어느 광고가 보여주듯이 실은 '찌질한' 김 대리는 얼마든지 우리의 영웅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기꺼이 평범한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 이야기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위인의 민주화는 명사라는 독특한 인물을 만들어낸다. 미국의 전설적인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오프라 윈프리 쇼'에 등장하는 감격적인 인물은 위인전의 주인공 같다기보다는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하고 있다. 거의 매일 지켜보는 휴먼 다큐 류의 프로그램은, 흔히 보는 나의 이웃이지만 특별하기 짝이 없는 인물로서의 그들의 됨됨이를 비쳐준다. 실은 명사란 말은 인기 많은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분투한 윤리적인 자세를 가진 모든 이를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성인군자이거나 초인적인 인물이 우리가 되새겨야 할 인물의 자리를 차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종교에서의 '성인'이 그 종교적인 세계를 만들어가고 지탱하는 중요한 장치의 일부를 이루는 것처럼 위인이란 그 세계가 추켜올리는 삶의 덕목에 사람들을 이끌어 들이려는 문화적인 장치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명사는 그런 위인을 조롱한다. 위인이라는 인물 이야기는 고압적인 자세로 감당할 수 없는 요구를 나에게 강요하는 성가시고 불편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반면 나의 명사로서의 평범한 이웃, 보잘 것 없는 배경과 학식, 재주를 가졌지만 자신의 삶을 너끈하게 살아가는 인물은 나에게 희망이 되고 격려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우리는 명사라는 새로운 인물을 우리 시대가 본받을 인물로서 채택하고 있을 것이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서 오바마가 떠맡은 상징적인 위치는 그가 처음 당선되던 날의 풍경을 전해주는 화면에서 생생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자신을 버린 케냐인 아버지를 둔 어린 흑인 소년이 어떻게 명문대를 졸업하고 시민운동에 투신하여 마침내 백악관에 입성하게 되었는가에 관한 감동적인 스토리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인물 이야기 속에는 스페인 내전의 전사나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 같은 인물을 위한 자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 인물들이란 세계와의 싸움을 자신과의 싸움으로 바꾸어내는 사람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명사 이야기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와 대적하는 인물보다는 자신의 삶이란 소우주에 갇힌 인물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명사라는 인물은 세계를 망각한 채 살아가는 기이한 인격체인지도 모를 일이다.

명사 정치가만 득세하고 있는 한국의 대선판은 어떨까. 어떤 세상에 살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세 명의 명사를 비교하는 인기투표가 대선이라면? 갑자기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는 우리 시대가 가진 인물에 대한 생각이 적잖이 거들었을 것이다.

서동진 계원예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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