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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명산의 기·전통의 멋·사케의 향 사나흘 여정내내 '흠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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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명산의 기·전통의 멋·사케의 향 사나흘 여정내내 '흠뻑'

입력
2012.11.0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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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적이리 만치 고아함에 집착하는 전통, 2,000m급 봉우리가 겹쳐진 우람한 산맥, 한 잔 두 잔 하다 보면 결국 앉은뱅이가 되고 마는 사케의 향….

도쿄처럼 사이키델릭한 분위기의 대도시 말고 일본의 지방을 여행할 때 테마가 되는 것들이다. 조금은 게으르고, 다소간 알뜰한 의문. 사나흘 정도 짧은 시간에 그걸 다 즐길 순 없을까. 호쿠리쿠(北陸) 지방에선 그게 가능하다. 이곳은 일본 혼슈(本州) 중앙부 가운데 동해와 만나는 북쪽 지방으로, 후쿠이(福井) 이시카와(石川) 도야마(富山) 니가타(新潟)현 등이 속해있다(니가타는 호쿠리쿠로 분류되기도 하고 고신에쓰(甲信越)로 분류되기도 한다). 가나자와(金澤) 같은 중세 도시부터 5층 높이까지 눈이 쌓이는 알펜루트, 유서 깊은 사케 양조장을 3, 4일 일정에 집어넣어도 빡빡하다는 느낌이 없다. 바쁘고 욕심 많은 한국인 여행객에겐 안성맞춤 코스다.

광활한 자연… 단풍·설경의 2중주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

버스가 굽이를 돌 때마다 차창으로 상쾌한 바람이 불어온다. 거대한 돌산 아래로 쇼묘폭포(稱名瀧)의 물줄기가 장쾌하다. 다테야마(立山)역에서 케이블카로 출발, 비조다이라(美女平)에서 산악버스로 갈아타고 1시간여 달려 도착한 무로도(室堂) 고원(2,450m). 이 정도 높이를 차로 오르기는 처음이다. 걸어서 오른 적도 없으니 난생 처음 오른 높이다. 귀가 먹먹해지더니 이내 잦아든다. 심호흡을 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고된 산행을 마친 알피니스트에게만 허락될 만한 절경이 펼쳐진다. 오른 수고에 비하면 눈 앞의 풍광이 과분하다.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의 매력은 케이블카, 고원버스, 산악열차 등 친환경 교통 수단을 이용해 광활한 자연을 즐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표고차가 최대 2,000m가 넘기 때문에 언제라도 두 계절을 함께 느낄 수 있죠."

도야마현에서 나가노(長野)현까지 약 95㎞에 달하는 산악관광지인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 코스는 해마다 100만명 이상의 일본인들이 찾는 관광지다. 안내자의 설명대로 아래쪽엔 단풍이 남아있고, 위쪽엔 벌써 눈이 쌓여 있다. 영화 '비밀'의 촬영지로 잘 알려진 설벽(雪壁)은 4월부터 6월까지 볼 수 있는데 눈이 많을 때는 최고 20m까지 쌓인다고 한다. 무로도 고원의 산책길은 무척 정갈하다. 주위를 둘러싼 풍경이 너무 장엄해서 사람의 발길이 한번도 닿지 않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위로 올라갈수록 쌀쌀한 기운이 완연하다. 알싸한 유황 냄새를 따라 10여분 오르면 미쿠리가 연못이 나온다. 수면 위로 산봉우리들과 청명한 가을 하늘이 선명하게 비쳐 마치 푸른색 도화지에 그린 풍경화 같다. 삼삼오오 둘러앉은 사람들이 환하게 부서지는 햇살 아래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만년설의 흔적이 남아 있는 다테야마(3,015m) 정상이 우람하게 솟아있고 왼쪽 아래로는 희뿌옇게 펼쳐진 도야마만(灣)과 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도야마 사람들은 아들이 열두 살이 되면 정상까지 함께 오르는 풍습이 있었다. 일본 3대 명산으로 신성시했던 다테야마 정상을 밟아야 비로소 가문을 이을 자식으로 인정했다고 한다. 우뚝 솟은 봉우리 수만큼 다테야마에는 이런 저런 전설도 많다.

구로베(黒部)댐으로 가려면 버스처럼 생긴 무궤도 전차로 갈아타야 한다. 전차는 1963년 완공된 댐 공사를 위해 산을 관통해 뚫은 터널로 다닌다. 도로의 폭이 좁아 터널벽에 부딪치지 않을까 아슬아슬했지만 전차는 용케 빠져나간다. 범접하기 힘든 신의 영역 다테야마가 인간의 발길을 허락한 것은 댐 건설이 계기가 됐을 것이다. 토목공사에 쓸 자재를 실어 나르던 터널을 관광자원으로 재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터널을 나와 다이칸보(大觀峰ㆍ2,316m)에서 로프웨이를 타고 내려다본 구로베다이라(黒部平) 능선 위로 오색구름이 몽실몽실 피어난다. 다테야마의 단풍 빛깔은 노란빛이 많아 들뜨지 않고 은은한 느낌이다. 봄 여름을 견디며 묵묵히 제 시간을 기다려온 느긋함이 배어 있다.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바쁜 기색 없이 여유롭다.

산 속은 해가 빨리 지고 어둠의 농도도 한결 진하다. 일본 전통 여관의 앞뜰에서 바라본 하늘에는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순간 재빨리 소원을 빈다. 멀리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고요한 밤을 깨운다. 검은 삼나무 숲 위로 다테야마 봉우리들의 웅장한 그림자가 아스라히 펼쳐진다. 우뚝하지만 위압적이지 않은 다테야마의 너른 품안으로 가을밤이 스며들고 있었다. 잡아둘 수 없는 시간이 아쉬워 한참 서성이다 차가운 밤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고풍스런 정원·최고급 사케 '미학·미각의 극치'이시카와·니가타

사나흘 일정으로 호쿠리쿠 지방을 여행할 때, 도야마의 대자연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이시카와와 니가타를 둘러보면 적당하다. 각각 오랜 역사와 일본 최고의 먹거리로 유명한 곳이다. 서로 다른 성격의 세 痔?오종종 모여 있는 덕에 짧은 일정으로도 일본의 다양한 면모를 체험할 수 있다.

이시카와의 중심 도시 가나자와는 에도(江戶) 시대 햐쿠만고쿠(百萬石ㆍ쌀 생산량이 백만석이라는 말로 전국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세력) 영주가 다스리던 땅이다. 흙담과 그을린 동판 기와로 지은 무사들의 집, 에도 시대 료테(고급 일식집)와 게이샤 연습장 등이 보존된 옛 거리가 남아 있다.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 곳은 일본 3대 정원의 하나로 꼽는 겐로쿠엔(兼陸園)이다. 1823년 조성한 공원인데 섬세한 기교와 고풍스러움이 일본 전통 미학의 극치를 느끼게 한다. 이곳의 식당에서 내오는 음식은 마키에(蒔繪ㆍ헤이안 시대 말기 완성된 옻칠 기법) 칠기에 담겨 있고, 차엔 금박이 떠 있다. 두어 시간 뒷짐을 지고 이 정원을 거니는 것만으로 에도 시대 영주인 다이묘(大名)가 된 듯한 여유를 누려볼 수 있다.

도야마에서 니가타로 넘어오면 제일 먼저 묘코(妙高) 고원을 지나게 된다. 일본 스키의 본고장으로 한국 스키어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이곳은 일본에서 손꼽히는 온천 지역이기도 하다. 니가타는 온천지(地)만 150곳으로 일본에서 세 번째로 온천이 많다. 아카쿠라(赤倉)에서 온천 소믈리에 다케다 히로후미(45)씨의 짧은 온천 강의를 들었다.

"온천 성분은 크게 9가지로 나눠요. 피부의 노폐물을 제거해주는 온천, 보습 효과가 있는 온천 등 모두 다르죠. 자신의 몸 상태에 맞는 온천을 골라서 가야 합니다. 아카쿠라 온천엔 황산, 탄산, 유황 성분이 많아 미백 효과가 있습니다. 입욕 전엔 충분히 수분을 섭취하고, 장시간 들어가 있는 것보단 분활 온천(들어갔다 나왔다 반복하는 것)이 좋죠. 잔소리처럼 들릴지 몰라도 꼭 지켜야 합니다. 온천에서 이 기본을 지키지 않아 매년 1만5,000여명이 사망해요. 아, 물론 온천의 유키미자케(설경을 보면서 마시는 술)가 제일 위험하죠. 한국인들이 특히 좋아하던데…."

니가타는 일본 최고의 쌀과 사케가 생산되는 고장이다. 해산물도 풍부하다. 그래서 니가타 여행에선 언제나 입이 즐겁다. 니가타현 안내자는 "꽃보다 당고(작고 동그란 찹살떡 간식)"라고 했다. 우리로 치면 '금강산도 식후경'쯤 되는 말이다. 이번 여행에선 사케의 설중(雪中) 저장법을 개발한 다카노이 양조장을 찾아갔다. 겨울에 빚은 술 일부를 눈더미로 묻고 100일 동안 숙성시키는 곳이다. 매년 5월 눈에서 술을 꺼낼 때, 떠들썩한 잔치가 벌어진다. 참가비 4,000엔을 내면 누구나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최고급 다이긴죠(大吟釀) 사케를 들이킬 수 있단다.

한참 술에 대해서 설명하던 사케 장인은 니가타 사케의 맛을 "단레이가라구치(端麗辛口)하다"고 정의했다. 글자대로 해석하면 맑고 깨끗하면서 동시에 독하다는 뜻. 영어 '슈퍼 드라이(super dry)'에 가깝지만 그 번역만으론 부족하다. 한국어엔 비슷한 말조차 없다. 제대로 느껴보려면, 역시 직접 마셔보는 수밖에 없다.

[여행수첩]

●3박 4일 일정으로 이시카와, 도야마, 니가타 세 현을 둘러보려면 고마쓰공항으로 입국해 니가타공항에서 출국하는 항공 일정이 편하다. 인천공항과 도야마 공항을 잇는 아시아나 직항편도 있다. 주3회(화, 금, 일요일 출발) 하나투어가 구로베협곡, 알펜루트, 묘코고원, 니가타 양조장 등을 묶은 상품을 판매한다. 매주 수요일 출발 99만9,000원. 1577-1233 ●도야마 알펜루트는 11월에 첫눈이 내리고 8월까지 눈이 남아 있다. 최고 높이의 설벽을 볼 수 있는 건 4월이다. 자연 보호를 위해 자가용을 이용이 금지돼 있다. 알펜루트 외에도 북알프스 깊숙이 파고드는 산악 협궤열차(구로베 협곡 열차)가 있지만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운행이 중단된다. www.alpen-route.com/kr 도야마현 관광정보 visit-toyama.com/kr ●니가타현은 스키 모니터 투어 참가자를 모집한다. 니가타에서 3일 이상 묵으며 스키 여행을 한 뒤, 설문지를 작성하고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여행기를 올리면 된다. 참가자에겐 15~20% 여행 상품 할인 혜택을 준다. 여행박사(www.tourbaksa.com)와 에나프 투어(www.enaftour.com) 등에서 선착순으로 신청을 받는다. 니가타현 관광 안내 www.enjoyniigata.com/korean

이승현기자 leesh30@hk.co.kr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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