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날. 매년 입시 때만 되면 잊지도 않고 또 오는 각설이도 아니면서 어찌나 매섭게 한파가 몰아치곤 했던지, 그러나 이제는 예전만큼 동장군 기세를 자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 온난화로 얼룩진 지구 환경의 변화와 일맥상통하는 얘기겠지.
수능 때마다 반복되는 뉴스라 하면 지각한 수험생이 경찰 오토바이에 실려 교문을 들어서며 박수를 받는 풍경이라든지 상상을 초월하는 커닝의 시도로 퇴실 조치된 사례라든지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만점을 예상하는 고득점자의 학습 비법 같은 소소한 얘깃거리와 더불어 결과에 낙심한 학생들이 택할 수밖에 없는 비관적인 뒤끝의 각종 일화들까지 지겹게 들리는 바, 어쩌다 이 하루가 한 사람의 평생을 좌지우지하게 되었을까.
18년 전 수능날 아침, 고3이던 내 손에 널 지켜줄 거라며 엄마가 쥐어준 보물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내 배냇저고리였고 까짓 것 이상하면 어떠랴 든든하면 그만이지 하며 교복치마 허리에 끼운 채 시험을 치르던 내가 있었다. 미신이라며 완강히 거부한 동생이 재수를 하고 나는 원하는 대학에 붙었으니 엄마는 한동안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 그랬다지만, 세월이 흐르고 보니 점수를 가지고 품었던 이런저런 한숨과 미련이 어찌나 덧없던지.
수험생 여러분, 부디 돌이킬 수 없음을 돌이키는 헛됨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시라. 누구든 밥 세끼 먹고 산다. 누구든 안 죽는 사람 없다. 매일같이 오늘의 해가 어김없이 뜨노니!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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