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제주 한라산에서 중년의 한 남자가 나무에 목을 매단 채로 발견됐다. 49살의 남성 김모씨였다. 그의 바지 뒷주머니에선 이런 쪽지가 나왔다. "이만 갑니다.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 모든 상황이 어찌할 수 없게 돼 세상의 끈을 놓습니다." 그의 몸에서 타살로 짐작할 만한 다른 흔적은 없었다. 자살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1년 6개월 전 이미 치사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하다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간신히 목숨을 건진 적이 있었다. 홀로 산에 올라가 목을 매달기 열흘 전엔 어머니 등 가족에게 전화해 "잘 챙겨 드시고 건강하세요" 등 안부 인사를 했다. 청년 시절 오랜 고시 준비와 연이은 실패로 한때 주위에서 '우울증 아닌가' 걱정할 정도로 침울한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이 모든 건 그가 언젠가 극단의 선택을 하리란 것을 예고하는 징후였다. 그러나 그걸 알아차린 사람이 없었다.
대부분의 자살 사망자들은 삶의 벼랑에서 몸을 던지기 전 주위에 이런 신호를 보낸다. 서종한 제주경찰청 프로파일러(범죄행동분석관ㆍ경장), 이창환 (서강대 심리학)ㆍ김경일(아주대 심리학) 교수, 김성혜 경기경찰청 프로파일러(경장) 등이 공동 연구한 '한국 자살사망자 특징'에서 밝혀진 결과다. 특히 이 논문은 자살사망자의 가족, 지인에 대한 심층 인터뷰와 자살자가 남긴 유서 등 기록물을 토대로 자살의 원인을 밝혀내는 심리적 부검을 연구방법으로 택했다. 우리나라는 변사사건의 육체적 검시나 부검은 일반화돼 있지만, 심리적 부검은 미개척 분야로, 이 방법으로 자살 사례를 연구한 논문도 이것이 처음이다. 이 논문은 최근 한국심리학회지에 실려 공개됐다.
연구자들은 2009년 1월부터 2011년 4월까지 전국 지방경찰청의 변사사건 수사자료 중 자살로 규명된 사례 56건(자살군)과 타살로 결론 난 36건(대조군)을 비교해 자살자들이 생전에 보이는 특징을 분석했다.
그 결과, 자살군은 자살 시도 전 자해 시도를 했던 비율이 절반에 가까운 46.4%나 됐다. 제2의 자살시도를 예측할 수 있는 주요 요소인 것이다. 또 자살자의 61%가 "괴롭다" "죽고 싶다" 등의 자살을 하겠다는 뜻을 사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말이나 문자메시지, 일기, 미니홈피 등을 통해 알렸다. 시기를 보면 자살하기 1시간 전 16%, 1시간~하루 전 26.8%, 하루~1주일 전 12.5%, 1주일~열흘 전 5.4%, 열흘 이상 전이 7.1%로 집계됐다.
사회생활에서 적응 정도도 자살에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 자살군은 학교, 직장 등에서 집단 따돌림, 관계 단절, 주위와 갈등 등 적응에 문제가 있었던 경우가 35%로 대조군 1.7%에 비해 약 32배나 높았다. 자살군에서 우울장애 등 진단을 받은 비율도 대조군에 비해 7.7배 많았다.
서종한 프로파일러는 "자해 시도를 한 경험이 있는 경우 보건소에서 심리 상담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사회보건의료체제를 통해 자살을 예방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며 "심리적 부검 연구를 좀더 특성화한다면 의문사 등에도 적용해 사망의 배경을 밝히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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