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왜 국민들에게 "해달라"고 말하지 않나

입력
2012.11.06 11:33
0 0

내년부터 대한민국은'천국'이 될 것이다. 남녀노소 지금보다 훨씬 많은 복지혜택을 누린다. 보육은 물론 병원도 공짜다. 청년들은 모두 일자리를 가지고, 비정규직은 없어진다. 정년도 60세로 늘어나고, 기초노령연금도 두 배나 많아진다. 대학생들은 등록금을 반만 내면 된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 모두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큰소리 치고 있으니.

세계적인 불황으로 장기 경기침체, 갈수록 적자만 쌓이는 국가 재정 따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기만 하면 된다. 혹시 내 몫이 적거나, 배가 아프다고 생각되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굳이 거리로 나서거나 앙앙거릴 것까지도 없다. 동료들과 모여서 셋 중 아무나 부르면 푸짐한 선물 약속을 받아낼 수 있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해주겠다"는 말만 한다. 이번 대선후보들만의 모습이 아니다. 5년 전에도 그랬다. 국민 여러분은 나를 대통령으로 뽑아주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내가 경제위기를 살려내고 사회 양극화를 없애고, 3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다. 그때의 약속대로라면 우리는 이미 천국의 백성이어야 한다.

대통령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하늘에서 저절로 돈을 떨어지게 하고, 하루아침에 대기업을 세워 젊은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일자리 70만개를 새로 만들지는 못한다. 정치는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다. 무슨 수로 고용율을 70%까지 높이고, 국민의 80%를 중산층으로 만들겠다는 건가.'혹세무민'이다. 어느 개그맨의 말처럼 정말 국민을 바보로 아나.

고교의무교육에는 2조4,000억원, 0~5세 무상보육에는 7조5,000억원(문재인), 기초노령연금 확대에는 5조원이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내놓은 온갖 '공짜' 복지 공약에 들어갈 돈을 건전재정포럼이 계산해 보니 새누리당은 75조원, 민주통합당은 그 두 배가 넘는 무려 164조7,000억원이다. 아무리 지금의 예산을 아껴 쓰고, 나눠 쓰더라도 누군가는 매년 8조원과 25조원 이상을 내놓아야 한다. 그 누구는 대통령이 아니다. 우리와 우리의 자식들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아직도 선심 쓸 때가 한두 곳이 아니니 얼마를 더 필요로 할지 모른다.

그나마 돈만으로 모두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실업과 비정규직 문제는 그것도 아니다. 매년 수 조 원의 예산을 퍼붓고도 제자리 걸음만 한 이명박 정부가 증명하고 있다. 일자리를 쪼개고, 근로시간을 나누고,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는 길밖에 없다. 정규직 노조의 태도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느 후보도 그들에게 "양보하고 희생하라"고 당당히 요구하지 못하고 있다. 편하고 안정적인 대기업만 원하는, 인내심도 도전정신도 부족한 청년들을 꾸짖지 않는다. 내일을 위해 국민들에게 세금도 더 내고, 같이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말하지 않는다.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들도 알고 있다. 절반 이상(57%)은 그들의 약속이 허황하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국민의 절반은 복지를 위해 돈을 더 낼 각오도 하고 있다. 국민의 현실인식과 공동체의식이 사라진 나라의 대통령은 불행하다. 더구나 표만 생각해 무책임한 공약들을 마구 쏟아내 당선되었다면. 국민 모두가 집단 이기주의에만 매달려 정부에게 일방적으로 약속 실천을 요구할 것이다.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1년도 안돼 분노와 실망으로 돌아설 것이고, 자질보다는 달콤한 말과 이미지로 유혹하는 새로운 인물에게 열광하는 악순환을 되풀이 할 것이다.

국민의 노력과 희생 없는 국가와 사회발전은 없다. 정말 국민이 행복한 나라, 사람이 먼저인 세상, 참된 미래의 지도자가 되겠다면 국민에게 "해주겠다"고만 하지 말고, "해달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케네디 대통령처럼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