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컨대 이런 세상이다. A씨는 프랑스 파리에 가족여행을 왔다. 불어는 한마디도 못하지만 걱정이 없다. 선글라스처럼 생긴 안경을 끼면 외국어로 된 간판이나 도로 이름, 신문 지면이 바로 한글로 바뀐다. 길을 묻거나 물건을 사고 싶다면 상대가 아닌 음성인식번역기에 대고 말하면 된다. 번역기가 A씨의 한국어를 불어로 바꿔 또박또박 읊으면 상대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른바 바깥 뇌(外腦ㆍExobrain)의 시대가 온다. LG경제연구원은 6일 '바깥 뇌 시대가 오고 있다'는 보고서에서 미래의 정보통신 기기와 서비스가 나를 대신해 학습하고, 기억하고, 최선의 조건에 맞춰 판단하고, 최적의 결과물을 찾아 인간 두뇌의 역할을 하는 시대가 멀지 않은 장래에 도래할 것으로 내다봤다. 내 몸 바깥에 두뇌를 하나 더 갖게 된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바깥 뇌 시대의 가능성은 무궁하다. 무겁고 불편한 컴퓨터를 대신할 스마트폰의 등장이 그 시작이다. 그러나 스마트폰 역시 수동적으로 작동하는데다, 손만 이용해야 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입는(wearable) 컴퓨터에 대한 연구다. 시제품은 나와있지만 상용화는 아직 안됐다.
보고서는 특히 최근 나온 '구글 글라스'(사진)와 국내업체가 만든 'Q트랜스레이트'라는 제품에 주목한다. 안경을 쓰고 있는 내내 스마트폰 및 인터넷을 이용하는 상태를 유지해, 스마트폰의 한계를 어느 정도 벗어났다는 것이다. 게다가 보고 있는 화면이 바로 정보 조회 화면이고 말하는 게 검색 명령이 된다. 스마트폰이 내 몸의 일부처럼 작동하는 셈이다. Q트렌스레이트는 카메라에 잡힌 외국어를 즉시 한국어로 번역해 보여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런 기술들이 입는 컴퓨터와 결합하면 간단한 외국어나 암기 등은 두뇌 보조기구에 맡겨둘 수 있는 바깥 뇌의 시대가 열린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스마트폰의 전화번호부 기능, 내비게이션 기능 등은 바깥 뇌 시대의 초기 단계라는 진단도 덧붙였다.
서기만 연구위원은 "바깥 뇌 시대는 이미 결정지어진 미래"라며 "이로 인해 고도의 네트워크, 클라우드 및 인공지능 서비스, 입는 스마트폰 등 바깥 뇌의 구현에 기여하는 산업을 활성화하는 반면, 암기 위주의 교육시장이나 통역처럼 기계로 대체 가능한 직종은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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