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은 '대수롭지 않은 소리'다.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해대는 말 그대로 온갖 잡스러운 이야기다. 새 책 (꽃자리 발행)은 그런 이야기를 적당히 모았다고 솔직하게 제목을 달았다. 그런데 읽다 보면 이야기가 전혀 잡스럽지 않다. 죽음불감증에 걸린 한국사회의 문제는 무엇인지, 안철수 현상이 담고 싶어하는 이 시대의 욕망은 무엇인지, 한국의 종교가 구제 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 경계도 거침도 없이 쏟아 내는 이야기의 주인공 세 사람 덕분이다.
조계종 안에서 개혁과 자정 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도법(63) 스님, 신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김민웅(56) 성공회대 교수, 평택 대추리나 강정마을, 쌍용차 해고노동자 농성장 등 사회문제가 된 현장에 어김없이 얼굴 내미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총무 김인국(49) 충북 옥천성당 신부가 책 출간을 기념해 6일 한 자리에 모였다.
정치, 자본 등 권력에 대해 비판적인 날을 세워온 세 사람은 책 이야기이면서 또 하나의 '잡설'을 의외로 한국 종교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했다. 세상을 구원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종교구원론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문을 연 도법 스님은 "왜 종교인들이 욕망의 지배를 받는지를 물어야 종교 구제도, 종교의 사회적 역할도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종교가 일상과 만나 섞여가며 자신을 바꾸어 가야 한다"며 "사회적 갈등, 모순이 있을 때 적당히 넘어가지 않고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신부는 "우울한 사람이 넘쳐 나고 건강한 사람은 화내는 것"이 한국 사회의 초상이라며 그런 사람들을 "보듬고 토닥거려 회복시켜 주는 어머니 역할을 하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책에도 거의 절반 정도가 정치, 특히 요즘 대선 후보들 이야기인지라 그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중 대선 후보에 대해 호불호가 있었는지 물음에 김 교수가 "박근혜 반대는 똑같았다"고 말하자 도법 스님이 말을 끊고 "아닌데"라고 말해 좌중이 한바탕 웃었다. 스님은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는데 나는 흥정을 붙이는 쪽"이라며 "색깔로 말하면 회색분자"라고 말했다.
이번 대선의 시대적 과제를 도법 스님은 "치유"와 "희망"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했다. 개개인의 아픔을 낫게 하자는 의미도 있지만 "좌와 우, 산업화와 민주화, 개발과 보존 같은 현대 사회의 대립과 분열, 아픔을 어떻게 풀고 갈 것인가를 후보들이 고민했으면 좋겠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상처를 보듬어 안는 것도 필요하지만 "누가 아프게 하는지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다"며 "힐링이 필요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이의를 제기하자 도법 스님이 다시 답하듯 말한다. "불교에서는 비(非), 공(空), 무(無) 같은 말을 써가며 누가 무슨 주장을 하면 그건 네 생각이지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현상을 늘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 말에 덧붙여, "김 신부와 김 교수는 약자 편에 서서 싸우자는 것"이지만 "나는 무슨 수를 쓰든 흥정을 붙여서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풀고 가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듭해서 "흥정"을 강조하는 도법 스님의 말을 받아 김 신부는 "현상을 보는 새로운 시야를 배웠다"면서도 "누가 봐도 분명한 잘못과는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도 "'예' 할 것은 하고 '아니오' 할 것은 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처음 초록동색으로 보이던 세 사람 이야기는 갈수록 다르게 느껴진다.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섯 차례 모여 웃어가며 '잡설'을 주고 받으면서 때로 얼마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종교학자인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와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가 초대 손님으로 참여한 좌담을 정리한 지강유철 양화진문화원 선임연구원의 말대로, 그들은 '현실의 아픔과 절망을 외면하는 그 어떤 거룩함이나 구원도 희망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데는 뜻이 다르지 않았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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