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사색의 향기] '절단 공화국'을 넘어서기 위하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사색의 향기] '절단 공화국'을 넘어서기 위하여

입력
2012.11.05 12:01
0 0

부분들이 모여서 전체가 되고, 전체를 나누면 부분들이 된다. 부분이 없는 전체란 가능하지 않고, 전체를 전제하지 않는 부분이란 있을 수 없다. 전체와 부분은 서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러니 전체가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해선 그것을 구성하는 부분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으면서 각자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테면 기계의 부품들이 그렇듯이, 부분이란 때로 여러 문제를 일으키면서 전체의 능률적인 작동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때 아마도 최선의 방안은 '닦고 조이고 기름 쳐서' 기존의 구성 부분들을 그대로 두고 그 관계를 조정함으로써 전체의 작동 방식을 개선시키는 방향일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이 효율적이지 않다고 판단될 때에는, 문제가 되는 그 부분들을 잘라내어 버림으로써 전체를 구하고자 할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초등학교에서 담임이 교실 분위기가 지나치게 시끄러우면, 문제되는 한 놈을 골라서 교실 밖으로 ?아내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최근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을 지배했던 소위 '합리화 과정'의 본질이다.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경제 성장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었고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사회의 '전체'가 근본적인 위기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우리의 집단적 감성을 자극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는 '합리화'라는 패러다임을 긴급하게 호출하였고, 이는 역설적으로 외견상 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더 적합해 보이는 이명박 정부의 탄생까지 불러내게 되었다.

이후 그 합리화는 어떤 과정을 겪었는가. 짧은 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보이려 했던 이 정부는 비합리적인 것들을 제거함으로써 합리화를 이룩하려는 가장 안전한 전략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많은 이들이 여기에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비합리적이라고 판단된 것들, 문제라고 판단된 것들이 놀랍게도 우리 자신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구조조정이라는 말에 박수를 보냈던 사람들은 그 칼날이 바로 자신의 목을 겨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아주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서야, 성급한 합리화는 항상 어떤 절단을 의미한다는 것, 그리고 그 절단의 칼은 개인의 인격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러나 이 정부는 여전히 그 합리화 혹은 절단의 전략을 주도하고 있다. 회사는 소위 경영의 합리화를 위해 노동자를 절단해내고, 학교는 소위 폭력 학생들을 가려내어 그들을 교육 현장으로부터 격리시키는 데에 몰두하고 있다. 심지어 성폭력이 문제되니 그 남성을 물리적으로 절단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왔다. 소위 종북 세력을 잘라내는 일에도 팔을 걷고 나섰다.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온라인게임을 자정 이후로는 절단하는 정책을 시행했고, 이를 심지어 모바일 게임에도 적용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우리는 지금 '절단 공화국'에 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하루에 40명 정도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 자살은 자기 자신을 가족으로부터, 동료와 친구로부터 그리고 이 사회로부터 잘라내는 행위이다. 그것은 대개의 경우, 우리의 공동체가 그들을 사실상 먼저 잘라내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그들의 자살 행위는 우리가 먼저 저지른 그 절단 행위를 완성하는 데 불과한 지도 모른다.

'보수'는 아마도 무언가를 지킨다는 의미를 지닐 것이다. 필요한 일이다.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지킬만하지 않다고 판단된 것을 잘라낸다는 의미까지 함축할 수는 없다. 유감스럽게도 이 정부는 여전히 절단에 여념이 없다. 헤라클레스는 아홉 개의 뱀의 머리를 가진 히드라와 싸워야 했다. 하나를 잘라내면 그 자리에 두 개의 머리가 생겨났다. 희망 없던 이 싸움이 헤라클레스의 승리로 끝난 것은 불로 그 머리들의 뿌리를 지져냄에 의해서였다. 국정은 히드라와의 싸움이 아니다. 우리가 잘라내야 할 뱀의 머리는 어디에도 없다. 칼을 든 헤라클레스로 자신을 이해하는 지도자는 이제 더 이상 선출되어서는 안 된다.

김수영 로도스출판사 대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