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표 초반 넥센 박병호(26)의 이름이 수 차례 호명돼도 표정 변화는 전혀 없었다. 유니폼이 아닌 정장을 입었을 뿐 그라운드에서의 침착함 그대로였다. 박병호는 시상대에 올라서야 활짝 웃었다.
박병호가 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2012 팔도 프로야구 최우수선수(MVP) 및 신인상 시상식에서 전체 기자단 투표 결과 총 유효표 91표 중 73표를 획득해 장원삼(삼성·8표), 김태균(한화·5표), 나이트(넥센·5표)를 따돌리고 MVP에 뽑혔다. 타자로서는 역대 19번째 MVP 수상이다.
박병호의 MVP 수상은 일찌감치 예견됐다. 올 시즌 넥센의 4번 타자로서 거포의 상징인 30홈런 100타점을 돌파하는 등 타격 3관왕(홈런·타점·장타율)을 차지했다. 또 올해부터 MVP 수상 기준을 기존의 포스트시즌 성적을 제외한 채 정규시즌 기록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다.
박병호는 수상 후 "시상식 전까지만 해도 설레는 마음이 없었는데 막상 선수들이 앉아있는 자리에 같이 있으니 손에 땀도 나고 긴장도 했다"며 "그러나 지난해와 달리 정규시즌 끝나자마자 투표를 해서 내심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박병호는 또 시상대 위에서 "트레이드를 통해 넥센에서 제2의 야구 인생을 시작할 수 있게 해준 이장석 대표님에게 감사하다"면서 "대표님, 내년 연봉 기대하겠습니다"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이에 이 대표는 '오케이' 사인으로 화답했다. 박병호의 재치 있는 수상 소감 뒤에는 스포츠 아나운서 출신인 이지윤씨의 힘이 컸다. 박병호는 "시상식 전날 아내 앞에서 리허설을 했다"며 웃었다. 박병호는 올 시즌 6,2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2005년 LG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박병호는 그 동안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거리가 멀었다. 기대주 평가를 받았지만 1군보다 2군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나 박병호는 지난해 시즌 중 LG에서 넥센으로 둥지를 옮긴 후부터 잠재력이 폭발했다. 지난해 후반기에 13개의 홈런포를 쏘아 올린 박병호는 올 시즌 팀의 붙박이 4번 타자로서 133경기 전 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9푼 31홈런 105타점 20도루를 기록했다.
박병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MVP는 꿈도 못 꾸는 선수였다"며 "2군 생활을 오래 하면서 '내가 야구를 정말 못하나'라고 생각을 할 만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피땀 흘리고 있을 2군 선수들에게 희망과 동기부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박병호는 이날 두둑한 상금도 함께 챙겼다. MVP 수상으로 상금 2,000만원에 3개의 타이틀을 휩쓸어 900만원(부문당 300만원)까지 더해 총 2,900만원을 받았다. 박병호는 "아버지가 차를 30만㎞ 이상을 타셔서 차 바꾸는데 보태고 싶다"고 설명했다.
박병호의 팀 동료인 서건창(23)은 91표 중 79표를 받아 신인왕을 차지했다. 서건창은 올 시즌 127경기에서 타율 2할6푼6리 1홈런 40타점 39도루(2위)를 기록했다. 이로써 역대 5번째로 한 팀에서 MVP와 신인왕이 나왔다. 또 5년 연속 중고 신인이 신인왕 타이틀을 가져갔다.
한편 KBO는 이날 투타 14개 부문 시상도 함께 진행했다. 시즌 37세이브를 올린 오승환(삼성)이 개인통산 5번째 세이브 타이틀을 가져갔고, 팀 동료 미치 탈보트가 승률(0.824), 류현진(한화·210개) 탈삼진, 박희수(SK·34개)가 홀드 부문에서 각각 수상했다.
타자 부문에서는 이용규(KIA)가 득점(86점)과 도루(44개) 2관왕을 차지했고, 최다안타 부문은 손아섭(롯데·158개)에게 돌아갔다.
퓨처스리그(2군리그)에서 활약한 북부리그의 투수 윤지웅(다승)·장원준(평균자책점·이상 경찰야구단), 북부리그의 타자 정현석(한화)·김회성(홈런·경찰야구단)·이재원(타점·SK)도 수상의 영광을 누렸다.
김지섭기자 on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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