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는 하우스푸어를 돕기 위해 각종 구제 상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지원 대상이 극히 제한적인데다 이자 상환을 늦춰주는 정도에 불과해 큰 도움이 되긴 어려워 보인다. 하우스푸어가 대출 규모를 축소할 수 있도록 이자 감면 등 적극적인 대책이 추가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하우스푸어 대책으로 프리워크아웃(사전 채무 재조정) 제도에 주택담보대출을 포함시키기로 하고 적용 대상, 금리, 상환 방식 등 공동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이다. 이를 토대로 이르면 이달 중 하우스푸어 구제 상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현재 운영 중인 프리워크아웃 상품은 주택담보대출자가 아닌 신용대출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금융당국에서 제도 변화를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프리워크아웃은 채무자 상환능력에 따라 이자를 감액해주고 원금을 분할 상환토록 하는 제도로, 2004년 국민은행을 필두로 상당수 은행들이 도입했다.
이미 신한은행은 지난달 12일부터 주택담보대출 이자 일부를 유예하는 프리워크아웃 상품 'SHB 가계부채 힐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최대 12개월까지 연 2% 이자만 내고 나머지 이자는 최대 1년까지 유예해주는 상품"이라며 "중도에 유예이자를 내면 대출금 만기가 36개월까지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말부터 하우스푸어 전용 상품인 '트러스트앤리스백' 시행에 들어갔다. 대출자가 주택 소유권을 우리은행투자신탁에 넘기고 신탁 기간(3∼5년) 동안 해당 주택에 계속 살면서 15~17% 수준의 연체 이자 대신 4.15%의 월세를 내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들 상품도 기존 상품처럼 한계가 많아 하우스푸어 구제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여전하다. 예컨대 기존 국민은행의 프리워크아웃 상품도 연체금리를 14.5%로 낮춰주고 10년간 분할 상환토록 하는 방식이다. 성실 상환자의 경우 3개월마다 0.2%포인트씩 이자를 낮춰주지만 이자나 원금 감면은 없다. 이번 신한은행 상품 역시 금리를 일정 기간 깎아주고 나머지 금리를 나중에 다시 돌려받는다는 점에서 기존 상품과 동일하다.
실제 신한은행이 지난 한달 간 '가계부채 힐링 프로그램' 신청을 받아 심사한 결과 신용대출은 1,023건 지원된 반면 주택담보대출은 33건에 불과했다. 하우스푸어에게 철저히 외면 받은 것이다. 반면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 프로그램은 이자 면제에다 원금을 최대 50%까지 감면해줘 채무자 부담 자체를 크게 줄이는 효과가 있다. 모 은행 관계자는 "원금이나 이자를 감면해주는 것은 성실히 빚을 갚는 사람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나는 데다, 아예 마음 놓고 연체를 해버리는 모럴해저드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 하우스푸어 문제가 가계부채의 가장 큰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은행들이 부실 대출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의미로 기업 대상의 프리워크아웃 제도를 시행하듯, 하우스푸어에게도 이자 감면 등을 통해 신용경색을 완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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