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군이 임진각을 타격할 것이라는 대북 감청 정보 분석을 토대로 북한의 도발 위협을 분명히 파악한 시점은 탈북단체들의 전단 살포 예정일인 지난달 22일 직전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지난달 19일 오전 북한민주화추진연합회가 사흘 후에 임진각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하겠다고 발표한 직후에는 이 같은 행동에 대해 심각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이 같은 날 오후 "전단을 살포하면 임진각을 조준타격하겠다"고 공언하며 위협했지만 정부는 "도발원점을 격멸하겠다"(19일 김관진 국방부 장관), "북한군 지원세력까지 단호하게 응징하라"(21일 정승조 합참의장) 등 오히려 군 지휘부의 강경 발언을 부각시키며 연일 맞불을 놓았다. 당시 통일부 관계자는 탈북단체들의 자제를 촉구하면서도 "정부가 전단 살포 자체를 차단할 법적인 근거는 없다"며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북한군 2군단의 도발이 임박했다는 정황이 감청을 통해 확인되면서 정부의 태도가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군 상호 교신을 통해 포격에 앞서 준비 사항을 확인하고 결의를 다진 것은 직접적인 도발 징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과거 1ㆍ2차 서해교전과 연평도 포격 사건의 경우 서해지역을 총괄하는 4군단 주도로 도발했다. 따라서 2군단의 이 같은 움직임은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실제 북한군은 2002년 6월 제2차 서해교전 발발 이틀 전에 사령부와 경비정 간 교신에서 '발포'라는 단어를 수차례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우리 군의 대북 감청부대는 정보를 입수해 상부에 보고했지만 묵살됐고, 교전에서 장병 6명이 전사했다.
앞서 변인선 북한군 4군단장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전방지역을 시찰한 사실도 심상치 않은 징조로 해석됐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연평부대를 전격 방문해 장병들과 결의를 다졌지만 군 당국이 불과 며칠 뒤 북한군 2군단의 도발 징후를 포착하면서 대북전단 살포를 차단하는 쪽으로 정부의 입장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또 북한군이 서해 최전방 부대의 해안포를 개방한 점도 도발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서해 전방부대의 대응화력을 증강하고 전투기 출격 횟수를 늘리는 한편 21일 오후 탈북단체 회원들의 임진각 진입을 봉쇄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북한이 전단 살포를 막는 등의 다목적 포석 차원에서 일부러 교신 내용을 우리 군의 감청에 노출시킨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대북 전단은 한번에 수만~수십만 장씩 대량으로 뿌려지는데다 북한 체제의 실상과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어서 북한 주민들이 동요하는 심리전 효과가 상당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북한이 탈북단체들의 전단 살포를 빌미로 대남 강경 위협 발언을 쏟아내는 것은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남측을 교란시키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남남갈등을 조장하고 여론을 분열시켜 선거에 개입할 소지가 다분하다. 북한은 지난달 29일 보수단체 회원들이 사전에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임진각에서 전단 5만장을 살포할 때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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