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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고 싶었다, 이 나이에도 새로운 음악 하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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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고 싶었다, 이 나이에도 새로운 음악 하고 있음을"

입력
2012.11.0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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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탱고 등 다양한 장르

제작자 '한국형 월드뮤직' 제안

성인가요 새 시장 개척 뜻모아

의외로 젊은층 반응 더 뜨거워

젊은 친구들과 새 시도

말로·박주원 등 재즈스타 참여

자작곡 아닌 받은곡 노래 도전

그간 해 왔던 노래와 너무 판이

작곡가 때려 주고 싶은 심정도

결핍 먹고 자란 노래

조실부모·슬럼프·이민… 힘든 시간 덕에 음악 꾸준히 해

노래는 스스로 찾고 기르는 것

축구광·DJ·화가·감독 지망생

배철수는 노래 전념하라지만 하고 싶은 것 너무 많아

다 웃지만 영화도 만들 것

음악이 대중없이 이것저것 담은 종합선물세트마냥 묶음상품으로 값싸게 소비되는 시대에, 이렇게 공들인 음반을 세상에 내놓는 건 '미친 짓'일지도 모른다. 음식 하나하나에 깊은 맛과 지극한 정성, 그리고 기품까지 담아낸 성찬(盛饌) 같은 음반을 되풀이해 듣다가 문득 짧은 글귀가 떠올랐다. 베스트셀러 책 제목이기도 한 '미쳐야 미친다'.

낭만 가객 최백호(62)씨가 12년 만에 낸 정규앨범 '다시 길 위에서'는 그야말로 '미치지 않고서는 미칠 수 없는(不狂不及)' 어떤 경지에 가 닿아있다. 이번 앨범에서 기존 곡은 그의 데뷔 앨범에 실렸던 자작곡을 재해석한 '뛰어' 하나다. '긴 꿈'같았던 '아득한 세월'을 담담하게 돌아보는 노랫말이 인상적인 타이틀곡 '길 위에서', 탱고와 클래식, 재즈를 버무린 격정적인 음률의 '목련',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업템포 라틴곡 '바람을 따라' 등 10곡의 신곡은 팝재즈에서 누에보 탱고, 라틴, 집시 스윙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다. 그의 폭발적인 가창력과 집시 기타리스트 박주원의 흥겨운 반주, 재즈 가수 말로의 현란한 스캣(즉흥적인 흥얼거림)이 어우러진 첫 트랙 '뛰어'의 가사처럼 '쏟아지는 빗속을' 마음 활짝 열고, 즐겁게, 뛰며 '메말랐던 가슴들'을 흠뻑 적셔주는 느낌이랄까. 그만한 경력, 그만한 나이의 가수가 신곡들로만 꾸민 음반을 내는 것도 좀처럼 보기 힘든 국내 가요계에서 이처럼 파격적인 변신은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음반이 발매된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 잘 마른 낙엽 빛깔을 닮은 갈색 셔츠에 미색 진 바지 차림으로 나타난 그에게 음반을 낸 소감부터 물었다. 억센 부산 사투리로 다소 쑥스러운 듯 내놓은 대답. "이 나이에 이런 앨범을 냈다는 게 제가 생각해도, 뭐라 하노, 좀 자랑스럽죠. 만든 사람(음반 제작자)이야 죽든 말든. 하하하하."

-손주 보실 연세인데, 캐주얼이 잘 어울린다.

늘 이런 차림이다. 30, 40대에 입던 옷들을 아직도 입는다.(웃음) 상가 갈 때 아니면 넥타이는 거의 매지 않고. 주변에서 더러 뭐라 하지만, 편하게 내 스타일대로 입는다.

-워낙 공들인 음반이라 반응이 어떨지 무척 궁금할 텐데.

예전에는 다 제가 작사, 작곡한 곡들로 앨범을 냈는데,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한테 받은 곡들로 새로운 시도를 해 기대도 크고 걱정도 좀 된다. 일단 주변 분들 반응은 굉장히 좋다.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오는 길인데, PD가 '목련'에 딱 꽂혀 '한국 가요의 틀을 완전히 무너뜨렸다'고 평하더라. '목련'은 녹음할 때 가장 고생했던 곡이라 개인적으로도 가장 애착이 간다. 멜로디도, 박자도 어찌나 까다로운지 처음엔 곡을 쓴 말로를 찾아가 두들겨 패주고 싶은 심정이었다.(웃음)

이번 앨범에는 각각 두 곡을 쓴 말로와 박주원 외에도 음반 프로듀서를 맡은 표창훈을 비롯해 김종익, 최광신, 유해인 등 실력파 작곡가들이 참여했고, 조윤성(피아노ㆍ편곡) 민경인(피아노) 전제덕(하모니카) 라벤타나(재즈탱고 밴드) 등 재즈계 스타들이 힘을 보탰다. 노랫말은 이번 음반의 기획자인 이주엽 JNH뮤직 대표가 대부분 썼다.

이 대표가 최씨에게 '한국형 월드뮤직' 음반 작업을 제안한 것은 지난해 말. 박주원의 2집에 실린 최씨의 노래 '방랑자'가 좋은 반응을 얻은 직후였다. 이 대표는 "고급하고 호소력 짙은 최백호의 목소리를 빌려 트로트나 7080 옛 노래가 대부분인 성인 가요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의외로 젊은 층의 반응이 더 뜨겁다. 음반과 음원 출시 후 트위터나 포털 사이트에는 '최백호 할아버지 새 앨범 좋다', '최백호옹이 박주원과 만난 것은 신의 한수였다'는 등 위트 넘치는 호평이 오르고 있다.

-대부분 한참 어린 뮤지션들과 작업했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제가 원래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모험도 좋아해 즐거웠다. 다들 젊지만 음악적인 면에서는 저보다 실력이 훨씬 뛰어난 사람들이어서 정말 많이 배웠다. 그동안 저는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가듯 쉽고 편안한 노래를 해왔는데 샵, 플랫이 잔뜩 붙고 박자도 울퉁불퉁한 곡들을 부르려니 녹음실에 들어가면 막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결국 도저히 蘆??못해 포기한 곡도 하나 있다. 음반을 다 만들어 놓고 보니 비로소 곡이 이해가 되더라.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사람관계에는 꾸준히 접촉하고 대화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이 나이에도 이렇게 배우는 게 많으니, 정말 재미있다 싶다. 세상이, 사는 게.

-이번 음반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나이 든 사람들도 이렇게 열심히 노래를 하고 있구나, 시시한 노래 말고 진짜 음악을, 흘러간 옛 노래만이 아니라 새로운 음악을 하고 있구나,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할까. 송창식 선배가 그동안 써놓은 곡이 1,000곡이 넘는데, 만날 때마다 채근을 한다. '앨범 좀 내라, 형님이 앞에서 가줘야 후배들이 죽~ 따라서 갈 것 아니냐, 싫으면 그 곡 나나 후배들한테 주든지'라고. 그래도 '이대로 충분하다'는 선문답 같은 말만 하고 꿈쩍을 안 하니, 나라도 해보자 싶었다. 한국 가요사를 써온 윗세대는 안중에도 없고 저 혼자 세상 최고인 줄 아는 젊은 가수들이 적지 않다. 이 앨범이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노래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은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곡절도 많았지만 36년간 꾸준히 음악을 해올 수 있었던 가장 큰 밑거름은 무엇인가.

자라온 환경이 제일 중요하다 싶다. 제 노래, 제 목소리에는 힘들었던 삶의 시간들이 배어있다. 좋은 가수들 보면 다 갖춰진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드물다. 참 묘한 게, 사람은 완벽하면 감성적으로 단순해진다. 예술적 감성은 결핍에서 생기는 것 같다. 딸 아이가 다섯 살 때 미국 이민을 갔다가 돌아온 뒤 여기서 초등학교 3년을 다녔는데 결국 적응을 못해 다시 나갔다. 그 후론 줄곧 부모와 떨어져 살았고 지금은 영국에서 영화 연출 공부를 한다. 한국에 왔다 갈 때 공항에서 친구와 붙들고 한 시간을 우는 걸 보고 내가 그랬다. 그 아픔이 너의 예술적 감성의 자산이 될 거라고.(웃음)

화제는 자연스레 "밤을 새워도 다 못할" 힘겨웠던 옛날 이야기로 옮아갔다. 그는 부친이 고교 시절 "다른 아이들 탄차 타고 다닐 때 말 타고 통학할" 정도로 부유한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생후 5개월 만인 1950년 11월 2대 국회의원에 막 당선된 부친이 교통사고로 숨진 뒤 그에겐 "애비 잡아먹는 놈"이란 멍에가 씌워졌다. 조부는 경제적 지원을 끊었다. 어머니가 교편 생활을 했지만 혼자서 삼남매를 키우기에는 힘에 부쳤다. "어린 시절 생각하면 어머니가 늘 돈 꾸러 다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재수 시절인 스무 살 때 어머니마저 암으로 돌아가셨다. 미대에 진학해 화가가 되겠다던 꿈도 사라졌다. 어려운 살림에도 외아들이라고 귀하게 자라 생활력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었던 그는 "밥 주고 옷 주고 잠 재워주는" 군대에 제 발로 갔지만, 폐결핵에 걸려 1년 만에 제대했다. 막노동부터 극장 간판그림 조수까지 닥치는 대로 일하며 겨우 생계를 이었던 그 후 3년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저린다고 했다. "뽀얗고 예뻤던 얼굴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어릴 적 동네 여자 친구들이 어쩌다 길에서 나를 보면 붙들고 막 울었다. 친구들은 걱정이 많았다는데, 그래도 자살 같은 나쁜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좋게 말하면 낙천적이고, 한마디로 무뇌 상태였다."

기회는 우연찮게 왔다. 친구 매형이 부산 서면에 연 통기타 업소에서 가수가 부족해 얼떨결에 무대에 섰다가 송창식 이장희 등 '서울 가수'들이 다녀가던 유명 업소에 진출했고,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로 유명한 하수영씨 눈에 띄어 서울로 왔다.

-76년 데뷔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는 어떻게 탄생했나.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이게 스무 살 가을 어머니를 떠나 보내고 방황하던 시절 긁적여둔 글인데, 술 친구로 어울려 다니던 작곡가 최종혁씨에게 '이게 가사가 될까'하고 건넸다. 별 말 없이 주머니에 넣더니 며칠 뒤 비에 쫄딱 젖은 채로 내가 노래하던 업소에 찾아와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는데, 어찌나 좋던지…. 내가 얼마나 생각이 없었느냐면, '와 좋다, 이거 패티김 주자' 그랬다.(웃음) 그렇게 낸 첫 음반이 요즘 말로 대박이 났다. 나중에 들으니 8만장이 팔렸다더라. 어머니가 외아들 두고 일찍 가시면서 불쌍한 놈 먹고 살라고 선물로 주신 게 아닐까 싶다. 정말 운이 좋았다.

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영일만 친구'가 실린 3집 발표 이후 슬럼프가 찾아왔다. 이혼의 아픔도 겪었다. 재혼해 딸을 얻고 안정을 찾았지만 "80년부터 10여년은 가수로서 암흑기"였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맨 바닥에 던져 놔도 살 수 있을 만큼 단련시켜준" 그 시절의 고통이 음악을 포기하지 않게 한 힘이 됐다고 믿는다.

-96년 '낭만에 대하여'가 히트해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 것도 극적이다.

노래를 하다 하다 안돼 도망치듯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DJ로 일하던 한인 방송국이 망했다. 배철수씨가 찾아와 '형 왜 이러고 사느냐'며 야단을 하더라. 그 꼬임에 넘어가 가수로 복귀했다. '낭만에 대하여'는 94년 발표한 건데 처음엔 별 반응이 없다 2년 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 나오고 히트를 쳤다. 그 가사는 어느 날 부엌에서 밥 하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스무 살 때 첫 사랑 생각이 나서 쓴 거다.(웃음) '첫 사랑 그 소녀는 지금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그 대목 말이다.

-노래를 만들 때 늘 가사를 먼저 쓰나.

나는 그렇다. 가사를 써야 멜로디가 풀려 나온다. 이번 앨범은 곡부터 만들어놓고 이주엽 대표가 가사를 붙였다는데, 정말 천재다 싶었다.(웃음) '목련'만 해도 말로가 술 취해서 자기 마음대로 불러본 노래인 듯한데, 거기에 '사랑, 떨어지려 오르는 운명' 하는 멋진 가사를 척 붙였다. 천재 하면 과학자들만 생각하는데 딴따라들도 천재가 많다.

-당대의 트로트 가수, 포크 가수와도 다른 독특한 창법은 어떻게 나왔나.

통기타 업소에서 남의 노래를 부를 때도 절대 모창은 하지 않았다. 되든 안되든 내 노래를 부르려 했다. 가창은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찾고 기르는 거지. 요즘 가수들 보면 제일 안타까운 것이, 실용음악과 같은 데서 선생님한테 노래를 배워 개성이 없다. 사람마다 폐활량도 다르고 음색도 다 다른데, 그걸 여기서 끊고, 이런 식으로 숨쉬는 데까지 일일이 적어주며 가르치니 자기 노래가 나올 수 있겠나.

-방송마다 넘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부정적이겠다.

방송 프로그램으로서는 인기가 있겠지만, 가수의 관점에서는 별로 좋지 않게 본다. 트레이닝을 하는 과정에서 자기 색깔을 잃어버리는 게 눈에 보인다. 기교 면에서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은 많지만, 마음에 와 닿는 노래는 많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요즘 가수들 가운데 개성이라는 측면에서 뛰어난 가수를 꼽는다면.

아무래도 싱어송라이터들에게 눈길이 간다. 이적과 TV에서 함께 노래한 적이 있는데, 정말 놀랐다. '다행이다'이란 노래에 녹아있는 감성은 사실 50, 60대는 돼야 느끼는 건데, 젊은 사람이 어떻게 그걸 잡아냈는지…. 밴드 중에선 그 뭐더라, 이름이 독특하던데… 아, 국카스텐. 그 보컬이 정말 노래를 잘 하더라. 여자 가수로는 알리.

최백호 하면 낭만과 함께 삶의 비애, 쓸쓸함 같은 단어가 떠오른다. 그러나 무대 밖의 삶은 다이내믹 그 자체다. 미사리 가수들과 축구팀을 결성해 궂은 날씨만 아니면 매주 토요일 공을 차고, 골프 실력도 수준급이다. 라디오 심야 음악 프로그램 DJ로도 활동하고 있다. 잠 자는 시간은 하루 4시간 남짓. 매일 아침 7시 반에 눈을 뜨면 오전에는 줄곧 그림을 그린다. 두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영화감독을 꿈꾸며 틈틈이 시나리오도 쓰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음악발전소 소장을 맡아 원로 음악인들을 위한 헌정 공연도 열고, 생활이 어려운 음악인들을 돕기도 한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겠다 싶다.

-억센 사투리가 DJ로선 약점일 텐데, 장수하는 비결이 뭔가.

원래는 6개월 정도 대타로 들어간 건데, 내년 3월이면 벌써 5년이다.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은 선곡이 제일 중요하다. 가곡부터 동요, 클래식, 팝, 록, 트로트까지 장르 불문하고 '좋은 노래'를 들려주려 애쓴다. 밤 10시부터 자정까지 진행하는 방송이라 대리운전이나 청소, 아파트 경비 등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이 많이 듣는다. 정말 좋은 노래들로 따뜻한 위로도 전하고 함께 추억도 되새기는 것이 정말 재미있다.

-좋은 노래의 기준은 뭔가.

천박하지 않고 부르는 이의 진심이 담겨있는 노래. 트로트를 흔히 '뽕짝'이라 부르며 경시하기도 하는데, 나훈아, 남진, 심수봉, 김수희 이런 분들의 노래는 정말 대단하다. 같은 트로트라도 행사나 뛰어다니며 돈벌이를 위해 부르는 시시한 노래는 안 튼다.

-배철수씨가 어느 방송에서 "100년에 한 두 명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라고 극찬하면서 "에너지가 넘쳐서 탈인데 노래에만 전념했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 화제가 됐다.

그건 배철수 자기 생각이지. 그 사람은 그렇다. 방송 딱 하나만 하고 살고. 어제도 만났는데 무슨 계획을 세웠다길래 뭐냐니까 "힘든 일 아무 것도 안 하고 살기로 했다"나. 내가 그랬다. "니 지금까지 그리 살아왔지 않냐"고. (웃음) 나는 하고 싶은 게 정말 많다. 다 웃지만 영화도 만들 거다. 시나리오도 미사리 무명 가수들의 애환을 담은 이야기와 세상을 확 뒤집어놓을 SF, 두 개나 써놨다. 정말 뛰어난 감독이 될 자신 있는데….

-"나이 드는 게 신난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들었다.

정말이다. 나이 들면서 좋은 일들이 더 많이 생겼으니까. 가수로서 새 삶을 살게 해준'낭만에 대하여'는 20, 30대에는 절대 못 만들 노래다. 세월은 그저 덧없이 흘러가지 않는다. 하루하루 차곡차곡 쌓여간다고 생각하면 진짜 멋지지 않나. 좋아서 즐겁게 노′求?나이 들수록 실력이 는다. 괜한 얘기가 아니고 목청도, 호흡도, 감정 표현도 더 좋아졌다. 아마 내 생애 최고의 앨범, 최고의 노래는 아흔쯤 나오지 않을까 싶다.(웃음)

선임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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