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0대 진입을 목전에 둔 '베이비붐 세대'의 막내다. 원래 그런 건지, 중도(中道)를 표방한 사풍(社風)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이념적으로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기자로서 균형과 중립을 지키며 비판적 시각과 자세를 잃지 않으려 할 뿐이다. 그것을 보수ㆍ진보의 틀로만 해석ㆍ분류하기란 쉽지 않다. 직업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선거 때마다 자주 후보 선택에 어려움을 겪었다. 투표 행위만 놓고 보면 나는 '스윙보터'에 가까울 것이다.
수도권에 거주하며 스윙보터 특성을 가진 40대, 특히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4후5초) 세대의 표심이 대선 승부의 주요 변수라는 소식이다. 내가 딱 그 경우다. 실제 주변의 4후5초들을 보면 대다수가 나처럼 '내 마음 나도 모르는' 부동층이다. 이들의 부동화 경향은 세대적 속성과 관련이 깊다. 민주화 과정을 체험한 세대로서 사회 구조적 변화를 통한 경제ㆍ사회적 빈자와 약자의 구제에 가치를 두고, 복지 인권 환경 같은 문제에 관심이 많다. 한편으론 현실 생활의 문제에 민감하다. 그로 인해 모순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교육ㆍ입시 제도의 개선을 원하면서도 자기 자식에게는 해당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은 경우가 그렇다. 수년 내 맞닥뜨릴 은퇴와 그 이후의 삶에 대한 불안감도 상당하다.
그런 4후5초들이 같은 세대인 안철수 무소속 후보에게 관심을 기울인 것은 자연스럽다. 안 후보가 우리 사회의 온갖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순 없겠지만 기존 정치와 다른 발상과 접근으로 새로운 변화를 이끌지 않을까 기대한 것이다.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생소한 분야에 뛰어든 도전 정신, 새 분야에서 기업을 일으켜 성공한 수완, 상대적으로 높은 도덕성, 고단한 삶을 사는 젊은이들에 대한 애정 등은 4후5초들의 호감도 상승의 밑천이 됐다.
그러나 갈수록 안 후보에 대한 같은 세대들의 관심과 기대가 떨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나도 예전만 못하다. 하강 속도도 빠른 것 같다. 출마 여부를 놓고 시간을 너무 끈 게 전조였다. 다운계약서 작성, 재개발 딱지 구입, 대기업 회장 선처 호소, 그리고 언행 불일치는 악재였다. 하지만 출마 선언 이후 그의 애매모호한 언행에 비하면 감내할 만한 수준이다.
4후5초 세대는 야권 후보 단일화와 관련해 뼈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1987년 김대중 김영삼 두 야권 후보의 단일화 실패가 그것이다. 그로 인해 민주화 역사는 10년이나 지연 됐다. 그때와 차원은 다르나 이번 대선에서도 야권 후보 단일화는 4후5초들에겐 중대한 문제다. 5년 전 경제회복 약속에 정권을 쥐어줬지만 MB정권은 경제회복은커녕 부정부패와 무능함만 노정하고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그런 정권을 탄생시킨 보수정당에게 책임을 묻지는 못할 망정 다시 정권을 준다면 4후5초들은 또 한번 깊은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후보등록일이 얼마 남지 않은 요즘, 야권 후보 단일화 문제를 대하는 안 후보 태도에는 절실함이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5월 공동정부를 제안한 이래 단일화를 언급할 때마다 성의 있는 자세를 보인 적이 없다. 초지일관 무시 전략이었다. 최근에는 민주당과 각을 세운 설전까지 벌였다. 단일화 방식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계산이다. 이해 못할 바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안 후보가 말하는 새 정치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정책 공약 개발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단일화 협상을 병행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안 후보는 지금 야권 후보 단일화의 대의명분은 내팽개친 채 정치적 계산과 수읽기에만 몰입한 모습이다. 이러다간 대선 주요변수 중 하나라는 4후5초 세대들의 표심을 잃게 될지 모른다. 안 후보는 이말저말 할 필요 없다. 설전과 신경전은 그만하고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 테이블에 무조건 앉기 바란다. 모바일 경선이든 여론조사든, 가치연대든 정책연대든 세력통합이든 모든 것을 올려놓고 대승적 차원에서 단일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정치적 손익에 연연하지 않고 국민을 위한 대의명분을 좇는 것, 그것이 새 정치다.
황상진 부국장 겸 디지털뉴스부장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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