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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힘으로 한장한장 새긴 남아공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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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힘으로 한장한장 새긴 남아공 헌법

입력
2012.11.0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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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대통령이 지명한 미국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올해 초 "아랍의 봄 이후 이집트가 어떤 헌법을 모델로 삼으면 좋겠느냐"는 이집트 언론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2012년에 헌법을 기초한다면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을 참고할 것이다. 기본 인권을 보장하는 남아공 헌법은 미국 헌법보다 훨씬 훌륭하다."

백인의 흑인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극복하고 탄생한 남아공 헌법은 시민의 기본적인 인권을 무엇보다 중시하고 평등과 사회통합의 정신을 강조해,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 어느 나라 못지 않게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알비 삭스(77)는 아프리카민족회의에 참여해 인종차별에 저항하다 넬슨 만델라 정부가 출범한 뒤 새 헌법을 만드는 데 참여한 남아공의 법학자다.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의해 수 차례 투옥 당한 끝에 해외로 추방됐고 심지어 그들이 보낸 보안요원의 폭탄 테러로 한쪽 팔과 한쪽 눈을 잃고 살아 남아 남아공 헌법재판소의 초대 재판관이 된 사람이다.

는 남아공 새 헌법의 정신이 무엇인지, 남아공 헌법재판소는 남아공의 인권과 민주주의, 사회 통합을 위해 어떤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를 삭스가 자신과 동료 재판관의 중요한 결정문 내용과 함께 에세이 형태로 소개한 책이다.

남아공 헌법의 정신은 만델라,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의 노벨평화상 수상과 함께 널리 알려진 1990년대 중반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위원회는 인권침해, 고문 심지어 살인을 저지른 가해자까지 진실화해위원회 앞으로 나와 과거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밝히도록 하기 위해 그들에게 민ㆍ형사상의 사면을 부여했다.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대가로 남아공 사람들이 얻은 것은 그러지 않았더라면 단편적인 경험과 억측, 분노와 원한으로만 기억되고 말았을 '진실'을 찾아낸 것이었다. 진실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 걸까. 극도로 정의롭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고 번져나갈 수 있었던 조건을 분석하고 공표해, 두 번 다시 그런 정의롭지 못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사면을 통해 법적인 단죄를 면했지만 그때 비로소 양심의 가책으로 눈물 흘린 가해자가 수두룩했다. 삶의 많은 날들을 '법률가인 동시에 범법자로 살아'온 저자는 위원회의 활동이 울림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대화로 다른 모든 관점을 듣고 모든 진영으로부터 의견을 수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 외에도 이 책에서 저자는 성매매에 대한 법적인 판단을 비롯해 가난한 주민의 강제 이주, 사형제도, 동성애 등에 대한 판결 경험을 녹여가며 남아공 헌법 정신을 설명한다. '국가가 머리를 기대고 누울 만한 장소가 절실한 집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궁지로 내모는 것은 그들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품위를 통째로 떨어드리는 행위'라는 지적이나, 성매매를 무조건 금지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문제제기는 지금 한국 사회에 대입해 읽어도 무방하다.

마치 기적과도 같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다 보듬어 안아 과거와 화해하고 그 과거의 기억 때문에 가장 선진적인 헌법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남아공의 경험은 국내의 개헌 논의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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