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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1월 3일] 자급자족의 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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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1월 3일] 자급자족의 한 해

입력
2012.11.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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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슬슬 산책을 하다 한 대형 쇼핑몰에 입점해 있는 한 대형 서점에 들렀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내 눈길을 끄는 건 책이 아니라 각종 볼펜들이어서 책상 위 서너 개의 연필꽂이 속에 꽉 들어찬 필기구들이 무색할 지경으로 집어들기 시작했는데 그러고 보니 말이 서점이지 건물의 절반을 차지하는 건 잡화 코너 일색이었다.

자 거기까지 그랬다손 치자. 인형이나 노트나 스티커 사러 왔다가 우연히 책에 이끌려 책을 사들이는 사람도 있을 테니. 그러나 책마다의 놓임에 있어 이보다 더한 안목으로 이보다 더한 부지런함으로 구매자들의 편의를 봐주는 서점의 배려는 없어도 될까.

누군가에게 급히 줄 일이 있어 내 시집을 찾았다. 베스트셀러 일색으로 매대에 같은 책이 마치 블록처럼, 마치 장판처럼 높고도 넓게 깔려 있는 가운데 참으로 왜소하게 한데 모인 시집 코너에서 내 시집을 두 권이나 발견하며 쾌재를 불렀다. 고작해야 몇 칸에 불과한 시집 책장이다 보니 무수히 많은 시집들 가운데 꽂힐 확률이 매우 적다는 걸 잘 아는 까닭이었다. 그러나 둘 다 사가면 더는 내 시집이 이 곳에 발 들이기 힘들 것을 알아 살짝 망설인 것도 사실이었다.

계산하며 물었더니 직원이 그런다. 시집이요? 하루에 적으면 한 권, 많으면 두 권 팔려요. 주로 잘 팔리는 책만 찾으시죠. 오늘은 이 서점 시집 장사 다했네. 쩝, 방법은 하나구나. 내가 주문하고 내가 사들일밖에.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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