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념의 도전과 아이디어로 2010년 간이식 신기원 열어초음파 흡입 수술기 개량 최대위험요인 지혈문제 해결흉터 최소화 하고 입원기간 단축美日서 "신기술 배우자" 방문도
옛날엔 불가능하고 생각됐지만 지금은 가능해진 치료가 많다. 의술이 발전한 덕이다. 의학사에 남을 커다란 업적이 의술 발전을 이끌기도 하지만, 기술의 작은 변화나 몇몇 의사의 참신한 시도가 치료 패러다임을 바꾸기도 한다. 한국일보 건강면은 의료진의 남다른 시도로 만들어진 새로운 치료 분야를 5회에 걸쳐 소개한다.
간암이나 간경화 때문에 간을 이식 받아야 하는 환자에게 간 일부를 떼어주는 사람은 뇌사자가 아니면 대부분 자녀나 배우자다. 간을 환자에게 떼어주고 난 공여자의 배 한가운데에는 보통 40~50cm나 되는 흉터가 남는다. 수술이 잘 됐어도 가족에게 상처를 남긴 환자는 평생 마음이 무겁다.
지난 2010년 3월 전까지는 모든 간 이식 수술이 이렇게 이뤄졌다. 환자를 위해선 건강한 공여자가 어쩔 수 없이 배를 열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2010년 3월 분당서울대병원에서 50대 아버지 박모씨에게 간을 떼어준 20대 아들의 몸에는 속옷을 입으면 가려지는 위치에 12cm의 흔적만 남았다. 아들이 전 세계 성인 간 공여자 중 처음으로 복강경으로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간을 떼어주는 가족의 몸에 큰 흉터를 남기지 않고 이식 수술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의료계의 통념을 깨고 기존 수술 기구를 변형하는 등 적극적으로 도전을 시도한 의료진의 의지 덕분이다.
암보다 떼기 어려운 건강한 간
2010년 3월 16일 오전 8시 어머니의 응원을 받으며 박씨의 아들이 수술실로 들어갔다. 분당서울대병원 외과 한호성 교수는 아들의 배에 0.5cm 크기의 구멍 5개를 뚫고 내시경카메라와 수술 기구를 넣었다. 한 교수는 모니터를 보며 5시간여 동안 카메라와 수술 기구를 정교하게 조작한 끝에 아들의 오른쪽 간의 약 60%를 잘라내는데 성공했다. 잘라낸 아들의 간은 옆 수술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버지 박씨에게 곧바로 이식됐고, 아들은 1주일, 박씨는 보름 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수술 전 5년 동안 간경화로 고생하던 박씨는 병세가 점점 악화해 간 이식만이 유일한 치료법이었다. 대학생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선뜻 간을 기증하겠다고 나섰지만, 자신 때문에 젊은 아들의 몸에 큰 상처가 나는 걸 원치 않았던 박씨는 계속 수술을 미뤘었다. 한 교수는 "간을 기존처럼 개복(開腹) 방식이 아니라 복강경 수술로 적출한 덕에 (당시 아들은)회복도 빨랐고, 수술 후 통증이 훨씬 적어 입원 기간도 5일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한 교수 이전에는 의사들이 좀처럼 이식 수술에 쓸 건강한 성인의 간을 떼어내는 데 복강경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간암 수술에서처럼 떼어내야 하는 암 조직이 이미 쓸모 없어진 상태라면 남은 조직만 손상되지 않도록 조심하면 된다. 하지만 건강한 성인의 간을 떼내야 할 때는 남겨지는 조직은 물론 떼어내는 조직, 거기 연결된 많은 혈관과 담도 등이 모두 상하지 않아야 한다. 그만큼 고난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다. 배를 열고 집도의가 직접 눈으로 보면서 수술해도 쉽지 않은데, 모니터를 보며 뱃속에 집어넣은 기구만으로 건강한 간을 감쪽같이 잘라내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오른쪽이다. 간은 왼쪽과 오른쪽의 두 조각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식 수술에는 보통 훨씬 큰 오른쪽(우엽) 간이 필요하다. 간 우엽은 혈관이나 담도 등이 좌엽보다 더 복잡하게 연결돼 있으면서 갈비뼈 안에 깊숙이 들어가 있다. 수술 기구가 우엽 근처까지 들어가더라도 공간이 비좁고 시야 확보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이런 여러 이유들 때문에 간 이식 공여자의 우엽을 복강경으로 절제하는 수술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의료계의 이 통념을 국내 의료진이 보란 듯이 깨뜨린 것이다. 한 교수는 "어떻게 하면 공여자의 수술 흉터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안정적인 이식을 할 수 있느냐가 간 이식 분야의 핫이슈인데, 앞으로 복강경 수술이 좋은 해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 될 거라던 수술이 모두…
모두가 불가능할 거라고 여겼던 수술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지혈이다. 멀쩡한 간을 잘라내고 나면 당연히 출혈이 많이 생긴다. 과거 개복 수술 때는 집도의가 혈관을 하나하나 잡아 실로 매듭을 만들어 묶어가면서 지혈을 했다. 하지만 복강경만으로는 이런 식으로 하다간 제대로 지혈이 되지 않는다.
한 교수는 초음파 흡입수술기(CUSA)를 이용했다. 간과 연결된 혈관이나 담관 등에 이 기구를 차례로 갖다 대고 지지면 피가 나지 않으면서 잘려나간다. 일반적으로 개복 수술 때 쓰는 이 기구를 한 교수는 작은 구멍을 통해 뱃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모양이나 크기 등을 복강경 수술용으로 개량해 줄 것을 의료 기기 회사에 별도로 요청했다. 瀏린?변형한 복강경용 CUSA 덕에 가장 큰 위험 요인인 지혈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막아 수술에 성공할 수 있었다. 물론 수많은 복강경 수술로 쌓은 경험 덕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한 교수가 간을 떼어내는 수술을 복강경으로 국내에서 처음 성공한 건 2000년이다. 단 당시는 이식이 아니라 간암 절제가 목적이었다. 4년 뒤엔 복강경 수술로는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던 오른쪽 간 뒷부분을 절제했고, 이어 5세 여자 아이의 간 종양도 복강경으로 잘라냈다. 소아 복강경 간 절제술이 성공한 세계 첫 사례였다. 한 교수는 "2000년대 초만 해도 간 절제술을 복강경으로 하는 병원은 거의 없었는데, 2008년엔 20곳 가까이로 늘었다"며 "아예 요즘은 프랑스, 싱가포르, 일본, 미국, 이탈리아 등 외국 의사들까지 우리 병원에 복강경 간 수술을 배우러 오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의료계는 다른 분야에 비해 보수적인 편이다. 더욱이 생명을 다루다 보니 새로운 시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교수팀은 최근에도 계속 아무도 해보지 않은 수술을 시도하고 있다. 한 교수는 "예를 들어 간 혈관 가까이에 암이 있으면 복강경 수술은 못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최근 우리 팀이 혈관과 암 사이를 복강경으로 정교하게 갈라낸 뒤 환자를 회복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의과대학 학생들에게 '외과 영역의 신기술'이란 제목의 강의를 한다. 남들이 하지 않는 수술 방식이나 쓰지 않는 수술 기구에 대해 후배 의사들이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시도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작은 기술적 변화와 의사의 소소한 경험이 점점 쌓이면 치료가 어려웠던 분야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강조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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