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IMF)로 사업을 접은 뒤 아내와도 헤어지고 한 평(3.3㎡) 남짓한 쪽방에 홀로 사는 A(75ㆍ서울 강북구)씨. 수입이라야 정부의 노인일자리 사업을 통해 번 29만원이 전부다. 생계가 막막해 2008년 구청에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는데, 연락도 되지 않는 세 아들의 소득이 파악돼 탈락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첫째와 둘째에게 구청의 요구대로 부양거부확인서를 받았지만, 셋째 아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확인서를 쓰는 것을 거부했다. 구청이 "모든 자녀들의 부양거부 확인서를 받아와야 수급자가 될 수 있다"고 해 A씨는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받지 못하고 쪽방을 전전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빈곤율은 개선되지 않고 있는데도, 이렇듯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바람에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은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 30일 국회예산정책처의 '2013년 보건복지부예산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최저생계비 이하를 버는 가구 비율인 절대빈곤율은 2004년 이후 한동안 증가 추세를 보이는 등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2004년 8.2%였던 빈곤율은 2009년 10.9%까지 꾸준히 늘었고, 2010년과 2011년 10.0%로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두 자릿수다.
그런데도 올해 기초생활수급자의 숫자는 141만5,000명(7월 현재)으로 지난해(146만9,000명)에 비해 3.7%가 감소했다. 지난해 수급자도 빈곤율이 더 낮았던 2005년(9.4%, 151만3,000명)보다 오히려 적은 숫자다. 수급자 수는 2010년 정점(156만9,000명)을 찍은 후 급전직하해 올해는 2004년(142만4,000명)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처럼 수급자가 감소한 이유는 2010년부터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이 본격 가동되면서 부양의무자의 소득파악이 촘촘해진 탓이다. 재정 누수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에 따라 자격기준은 엄격해졌지만, A씨처럼 빈곤층이면서도 대상에 제외되는 층을 구제하는 데에는 인색했다. 연락이 끊긴 가족의 소득으로 인한 수급자 탈락이 속출하면서 민원이 줄을 잇고 있다.
이를 감안해 보건복지부는 올해초 노인, 장애인, 한부모 가정의 경우 부양의무자의 소득기준을 최저생계비의 130%에서 185%로 완화해 수급자가 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9월 이 조치로 인해 신규로 편입된 인원은 예상치(6만1,000명)의 절반 남짓한 3만7,000명에 지나지 않는다. 문턱이 여전히 높다는 의미다.
탈락자는 편입자보다 훨씬 많아 2010년에는 2만3,000명, 지난해에는 9만9,000명이나 초과했다. 올해도 6월까지 탈락자는 11만2,000명, 편입자는 6만9,000명으로 수급자가 4만3,000명 줄었다. 빈곤상태에서 벗어났기에 수급자가 줄었다면 반가운 노릇이지만, 빈곤율 통계는 현실이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당국이 수급자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복지부는 최저생계비를 벌지 못하는데도 부양의무자 규정 때문에 비수급자인 경우를 117만명(2010년 기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김미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기획조정실장은 "부양능력이 있고 실제로 부양하는 경우에만 부양의무자로 판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빈곤층에 대한 실질적인 사회안전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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