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가족이 수조원의 재산을 쌓았다는 주장이 제기된 가운데 원 총리의 전임자로 그 동안 칩거해온 주룽지(朱鎔基ㆍ84ㆍ사진) 전 총리가 돌연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18차 당 대회ㆍ11월 8일 개막)가 다가온데다 주 전 총리가 청백리로 존경받아온 인사란 점에서 정치적 함의가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주 전 총리가 부인 라오안(勞安) 여사와 함께 24일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열린 2012년 칭화(靑華)대 경영관리학원 자문위원회에 참가했다고 CCTV가 30일 보도했다. 칭화대 경영관리학원 초대 원장을 지낸 주 전 총리는 이날 "칭화대 경영관리학원이 하버드나 스탠퍼드, MIT 경영대학과 같은 세계 일류 비즈니스 스쿨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리틀 주룽지'로 불리며 18차 당 대회를 통해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한 왕치산(王岐山) 부총리를 비롯해 류옌둥(劉延東) 국무위원과 국무원 비서장 마카이(馬凱) 등이 참석했다. 또 위안구이런(袁歸仁) 교육부 부장, 저우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장, 궈수칭(郭樹淸) 증권감독위원회 주석, 천위안(陳元) 중국개발은행 회장, 러우지웨이(樓繼偉) 중투공사 회장, 창전밍(常振明) 중신집단 회장 등이 동석, 마치 주 전 총리의 인맥을 과시하는 듯 했다.
주 전 총리는 개혁ㆍ개방의 기틀을 잡고 중국의 고도 경제 성장을 이끈 주역이자 부정과 부패에 단호히 대응한 철혈재상(鐵血宰相)으로 유명한데 이는 원 총리의 최근 추문과 대비되는 면모다.
주 전 총리는 또 상하이방-태자당 연합세력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반면 원 총리는 반대파인 공산주의청년단파와 가깝다. 왕치산 부총리도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건 당시 강경파였던 야오이린(姚依林) 전 부총리의 사위로, 태자당의 일원이다. 이에 따라 주 전 총리의 행보는 원 총리와 공청단파에게는 부담이, 왕 부총리와 상하이방-태자당 연합세력에는 힘이 될 수 있다. 공청단파인 리커창(李克强) 부총리와 태자당 소속인 왕 부총리가 차기 총리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편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9일 뉴욕타임스(NYT)의 원 총리 일가 재산 보도와 관련해 "중국 지도자와 중국을 여러 방법으로 비방하려는 국제적 세력이 있다"며 "이들은 중국이 강대해지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겠지만 이러한 기도는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에 서버를 둔 중문 뉴스 사이트 보쉰(博訊)은 시진핑(習近平) 부주석 일가의 재산을 보도한 블룸버그 기자와 원 총리 일가의 재산을 보도한 NYT 기자가 모두 살해 위협을 받았다고 주장, 파문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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