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언젠가 훌륭한 배우가 되는게 내 꿈… 요즘 연극 깊이·절실함 부족해 보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언젠가 훌륭한 배우가 되는게 내 꿈… 요즘 연극 깊이·절실함 부족해 보여"

입력
2012.10.30 12:04
0 0

반 세기 전의 일이다. 대학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었다. 인천의 신문보급소에서 일하던 중 어느 날 연극 표 2장이 생겼다. 보급소장이 준 그것으로 서울에 와서 남산 드라마센터의 개관 공연 '햄릿'을 봤다. 장민호 김동원 황정순이 주연이었다. 당대 최고 배우들의 연기에 넋을 잃었다. 남은 표 1장으로 다음 날 또 가서 봤다. 공연 팸플릿 뒤에 박힌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드라마센터 부설 연극아카데미 학생 모집.'오디션을 봐서 붙었다. 1962년 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 1기생으로 입학했다.

배우 전무송(71)의 연극 인생 50년은 그렇게 출발했다. 연중 무휴 공연하는 극장을 목표로 드라마센터를 세운 희곡작가 동랑 유치진은 배우를 제때 구하기 어렵자 배우 양성소로 연극아카데미를 만들었다. 지금의 서울예술대학의 전신이다. 여기서 많은 인재가 나왔다. 배우 신구 이호재 민지환 반효정, 극작ㆍ연출에 윤대성 오태석 노경식 박조열이 같은 1기생이다.

11월 8~18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 올리는 연극 '보물'은 전무송의 무대 인생 반세기를 돌아보는 기념작이다. 딸(전현아)이 대본을 쓰고, 사위(김진만)가 연출하고 아들(전진우)이 함께 출연한다. 일생을 연극에 바친 노배우가 공연을 앞두고 최종 리허설을 하다가 쓰러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오랜 동지인 배우 오영수(전 국립극단 배우)가 우정 출연해 힘을 실어준다.

"애들이 '우리가 본 아버지의 일생을 무대에 그려보고 싶다' 그러더라고요. 아버지로서 또 배우로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요."

연극배우 대부분이 먹고 살기 힘든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 길을 반세기 걸어온 힘을 그는 '순전히 좋은 분들을 만난 덕분'이라고 했다.

"주변에서 인덕이 있다고들 해요. 허물이 있어도 덮어주고 모자라는 것은 채워주고 이끌어준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지. 유치진 선생이 좋은 배우가 되려면 먼저 훌륭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어. 배우가 무대에서 말 하는 데 10년, 제대로 연기하려면 10년 걸린다면서. 그 말씀이 숙제야. 훌륭한 인간 되기가 어렵잖아. 언젠가 훌륭한 배우가 되는 게 내 꿈이야. 무덤에 들어갈 때 그런 말을 듣는다면 숙제를 푼 거겠지."

지난 시절 고생한 이야기는 구차해서 말하기 싫다고 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 첫애(딸)를 낳고 우윳값이 없어서 어머니에게 손을 벌렸고, 나중에는 아내가 결혼 예물로 가져온 피아노까지 실려나가는 것을 봐야 했다.

"안 되겠다, 연극 다 때려치우겠다고 하자 마누라가 말렸어. 우리 마누라, 나 때문에 정말 고생했지. 장사도 하고 별짓 다하면서 연극 열심히 하라고 도와줬어, 바보 같이."

연극배우 전무송은 아서 밀러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의 주인공 윌리 로먼 역으로 유명하다. '영원한 윌리'로 통한다. 햄릿을 번안한 '하멸태자'와 베케트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블라디미르 역도 배우 전무송을 각인시켰다.

그동안 섰던 수많은 무대에서 잊지 못할 추억으로 그는 1977년 뉴욕 라마마극장에서 공연한 '하멸태자'를 꼽았다.

"커튼콜에 우박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거야. 나가 보니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발을 구르며 브라보를 외치더라구. 서양에나 있는 전설인 줄 알았던 기립박수를 받으니까 눈물이 나더라고. 지금도 기억이 생생해. 그 때만 해도 여권이나 비자 받기도 힘든 시절인데, 이 작품으로 네덜란드 프랑스 덴마크 순회공연을 하면서 칭찬을 받았지. 오프오프 브로드웨이 연극상인 오비상 후보에도 오르고."

강산이 다섯 번 바뀌는 세월 동안 연극을 지킨 그가 보기에 요즘 연극은 제작기술 등은 엄청 좋아졌다. 하지만, 인생의 깊이를 표현하는 힘은 약해진 것 같다고 했다.

"예전에 비할 수 없이 풍요로워져서 그런가, 절실함이 없어. 배가 고파야만 좋은 연극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절실함을 놓쳐서는 안 돼. 춤을 추는 데도 손끝 하나의 절실함이 있어야지. 연극, 글쓰기도 마찬가지이고."

오미환선임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