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약속했던 일로 부산에 다녀왔다. 타고난 마음씀의 소유자인 한 선배의 배려로 공항에서부터 모든 일정을 소화할 수 있게끔 차량으로 이동하는데 우와, 부산 참 넓었다. 아니 길었다.
해변을 따라 밀리고 밀리는 바닷물의 반짝임에 눈부셔하면서도, 천하장사 허벅지처럼 굵은 각종 콘크리트 대교 위를 달릴 수 있음에 감탄하면서도, 곳곳에 솟아 있는 새 아파트들의 위엄 아닌 똥폼에 얼마나 눈살이 찌푸려지던지. 다들 입주해서 살고 있겠죠? 이렇게 아파트만 계속 지어서 될 일일까요? 나는 왜 이 좋은 풍경을 앞에 놓고 걱정만 늘어놓을까요?
훼손된 해변가, 깎인 산, 뽑혀 나간 나무 구덩이, 그걸 편히 보라고 바다가 보이는 앞자락에 카페들은 앞다투어 공사중에 있는 걸까. 살아보니까 여긴 도시가 아니라 한 나라야, 그래 가야국. 생각해 봐 인구 오백만이면 아일랜드라고. 김해공항에서 이리 넘으면 진해고 그걸 또 어찌 넘어가면 통영이고, 라며 쭉쭉 뻗은 노선도에 대한 선배의 설명이 이어질 때 나는 을숙도라는 말과 다대포라는 말과 몰운대라는 말의 이쁨에 대해 생각했다.
세상 모든 꽃과 벌레와 나무의 이름을 누가 다 지었을까 싶은 만큼 섬, 그 수많은 우주의 작명은 애초의 누구의 호명이었을까. 그래서인지 있던 이름 지우고 새 이름을 갖다붙이는 새 주소 정비가 내겐 아직도 낯설다 못해 불편한 진실인가보다. 참, 나 부산이지. 회는 역시 싱싱 부산이네요.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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