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에게 시, 판소리, 조각까지 가르쳐 작품집도 내고.
송추아트밸리 만들어 무명 조각가들에게 활동 공간 제공
아시아 최대 조각 작업장 설립
크라운해태제과 임직원 100명은 지난 4월부터 반년 동안 판소리를 배웠다. 11월3일 열리는 국악공연인 제8회 ‘창신제’에 직접 나와 ‘사철가’를 부르게 된다. 윤영달 회장 역시 예외는 아니다. 특히 고위직은 대표이사를 제외하면 100% 참여를 독려했기 때문에 팀장급 이상은 대부분 예외 없이 소리를 배웠다.
크라운해태제과 임직원들은 소리만 하는 게 아니다. 모두 시 한 편쯤은 쓰고, 조각 작품도 만든다. 지난해에는 전 직원이 시를 배우고 써서 시집도 냈다. 시집 안에는 공장 근로자들이 공동 작업한 조각 작품 사진도 실려 있다.
이 모든 건 경영진부터 말단 사원까지 모두 예술가적 소양을 키워야 한다는 윤 회장의 ‘AQ 경영’ 소신 때문이다. ‘AQ’란 용어는 지능지수(IQ), 감성지수(EQ)에서 힌트를 얻어 만든 말로, ‘예술(Art) 지수’를 뜻한다.
서울 남영동 본사에서 만난 윤 회장은 직원들로부터 “본업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예술에 몰입한 모습이었다. 집무실 분위기부터 남달랐다. 조각, 디자인 관련 서적과 세계 각지에서 가져 온 작고 재미있게 생긴 조각 작품들, 공예품, 그리고 크라운-해태제과의 과자 제품 봉지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다.
윤 회장이 처음부터 예술에 빠졌던 것은 아니다. “과자업체들이 만드는 제품에 차별화란 한계가 있습니다. 맛도 비슷하고 가격도 비슷하고 품질도 비슷할 수 밖에 없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소비자에게 어필할 것인가를 고민했고 결국 예술적 서비스를 제공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예술은 돈만 있다고 하루아침에 쉽게 되는 것이 아니므로 충분히 차별화된 혜택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작게는 과자포장지에 그림을 넣는다거나, 획일적인 사각형의 초콜릿 조각을 다른 형태로 변형한다거나 하는 시도도 있다. 하지만 윤 회장의 예술경영의 하이라이트는 송추아트밸리이다.
해태크라운제과가 경기도 송추유원지 부근 약 330㎡ 부지에 5년 전부터 조성 중인 송추아트밸리는 복합문화예술단지다. 여러 미술분야 가운데에도 조각을 테마로 한 이 곳에는 삼림욕장, 조각공원, 예술 체험 존 등이 조성되고 있다. 크라운해태제과의 과자 봉지 안쪽에는 포인트를 주는 QR코드가 새겨져 있는데,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포인트가 적립되고 그 실적에 따라 송추아트밸리 초대권이 제공된다. 이곳에서 어린이들은 장승 만들기 같은 10가지의 예술체험을 할 수 있다. 윤 회장은 “이 곳에 오기 위해 크라운해태제과 제품을 사먹는 날이 오게 될 것이고 앞으론 송추아트밸리가 크라운해태제과를 먹여 살리는 핵심역량이 될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가지 예술 분야 중에서도 윤 회장이 중점 지원하는 분야는 국악, 시, 조각 세 분야이다. 각각 음악, 문학, 미술 중에서도 특히 예술가들이 먹고 살기 힘든 분야이기 때문에 선정했다고 한다. 2007년 민간기업으로는 최초로 전통 국악단인 ‘락음국악단’을 창설하고 지금까지 공연을 지원하고 있으며, 무명 조각가들에게는 송추아트밸리 근처 모텔을 개조해 작업장 겸 거처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조각협회 후원회장인 윤 회장은 공장이 위치한 지역이나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현지 조각가들로부터 애로 사항을 듣는다. 조각가들이 큰 작업장이 없어 작품을 옆으로 뉘어서 작업하고, 부분별로 잘라서 운반한 뒤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작품이 훼손된다는 얘기를 듣고 송추아트밸리 내에 높이 15㎙의 아시아에서 가장 큰 조각 작업장을 만들기도 했다. 공장이 위치한 지역 조각가들에게는 공장을 작업장 겸 오브제로 쓰도록 하고 있다.
윤 회장이 요즘 가장 공을 들이고 건 내년에 3회를 맞는 ‘조각 페스타’이다. 국내외 조각 작가들을 초청해 국내에서 직접 주제에 맞는 작품을 만들고 전시하는 축제다. 내년에는 우리 민요 ‘아리랑’을 주제로 경연을 열 예정이다.
윤 회장은 “2005년 크라운제과가 덩치가 더 큰 해태제과를 인수한 후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아침 7시에 양사 임직원들이 섞여서 예술 관련 강의를 듣도록 하고 송추아트밸리 체험도 하도록 독려했더니 점차 화합하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엔 업무 이외의 활동이 부담도 됐지만 이젠 회사 임직원 모두가 시인이자, 조각가이고, 소리꾼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인터뷰=이성철부장 sclee@hk.co.kr
정리=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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