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전국의 중소 도시에 있는 41개 도서관에서 83개의 서로 다른 주제의 과학 강연이 열렸다. '10월의 하늘'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행사는 2010년 여름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가 트위터를 통해 과학 강연 기부 행사를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매년 10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 평소 과학자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은 작은 도시의 도서관에서 과학자들이 동시에 강연을 하자는 것이었다. 짧은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그 해 10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 전국 29개 도서관에서 67개의 과학 강연이 열렸다. 강연 진행을 돕는 자원봉사자도 64명이나 참가했다. 가수들은 주제곡을 만들어 줬고 아티스트들은 포스터를 디자인했다. 이 모든 작업이 트위터를 통해 이루어졌다.
'10월의 하늘'의 모태가 된 독립된 두 가지 인연이 있었다. '10월의 하늘'이 열리기 몇 년 전부터 정재승 교수를 포함해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과학자, 기자, 도서평론가, 과학저술가 10여 명은 1년에 한 번씩 강원 화천 같은 작은 마을을 찾아 다니면서 1박 2일에 걸친 과학 강연회를 진행했었다.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오전까지 이어지던 긴 강연회에서 만났던 오지 마을 학생들의 초롱초롱하던 눈동자가 지금도 또렷하게 생각난다.
여러 해 전부터 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에서는 한국도서관협회와 협력해서 전국의 중소 도시 도서관에서 1년에 열두 번 물리학 강연을 열고 있다. 이 강연회의 초기 기획자 중 한 사람이 바로 정재승 교수였다. 이 행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데 나는 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 과학문회위원으로서 이 강연회를 진행하는 일을 맡아서 하고 있다.
'10월의 하늘'은 언뜻 보기에는 대중성을 지닌 한 스타 과학자의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로 생겨난 우연하고 특별한 재능 기부 이벤트처럼 보인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그 뿌리는 생각보다 깊다.
'10월의 하늘'은 한 과학자의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그 가치에 공감하는 트위터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한 아름다운 사건이다. '할 수 있는 만큼만 즐겁게 하자'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10월의 하늘'은 과학 강연을 하는 사람도,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사람도 즐겁게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서 이 이벤트에 기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강연 기부 행사가 끝난 다음에는 그들을 위한 자축 파티도 열린다. 자신들의 가치를 지키는 멋진 강연 기부 행사의 전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즘 곳곳에서 '재능 기부'가 유행이다. 그러다 보니 선의의 자발적인 '재능 기부'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일들도 자주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는 마땅히 재능을 기부하라는 의무를 지우고 강요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가령 아티스트들에게 '재능'은 남아도는 잉여가 아니라 절박한 노동의 대가를 얻기 위한 삶의 도구이다. 그런 '재능'을 '기부'라는 이름으로 착취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일이 과하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기부 문화가 나날이 확산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그 결과만을 생각하기보다 참여하면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멋의 가치를 다시 되새기면서 쉼표를 한 번 찍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못하면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기부 문화가 오명을 뒤집어쓰고 고꾸라져버릴지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일에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듯이 기부에도 그에 걸맞게 정당한 가치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행사를 쉽게 진행하기 위한 도구로서 재능 기부자를 이용하는 일은 정말이지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자발적이고 수평적이면서 개방적인 강연 기부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10월의 하늘'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거기서는 강연 기부자들과 진행자들의 가치를 한껏 존중하는 문화가 살아있다. 과정이 맑아야 결과도 좋고 즐겁다. 나도 지난 토요일 오후 전남 목포어린이도서관에서 시각장애인들과 과학을 사랑하는 꼬마 아이들 앞에서 직접 만든 점자책을 만지면서 강연을 했다. 그들이 벌써 그립다.
SETI코리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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