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총재,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東京)도지사 등 한때 일본 정계에서 사라졌던 원로 정치인들이 속속 현실정치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극우성향을 가진 두 정치인은 한결같이 나약해진 일본을 강하게 만들겠다고 정계복귀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말로만 강한 일본을 부르짖을 뿐 현실을 내팽개친 채 정계를 떠난 전력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2006년 9월 총리가 된 아베 총재는 각료들의 부정 스캔들이 잇따르면서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하자 2007년 9월 12일 돌연 "총리직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다"며 물러났다. 정치권에서는 임시국회에서 아베의 실정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추궁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소설가 출신으로 1968년 참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시하라 지사는 중의원 8선을 거친 정치인이었지만, "강한 일본을 만들기 위해서는 핵무장을 해야 한다" "나약한 젊은이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징병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강경 발언으로 소속 자민당 내에서도 늘 비주류에 속했다. 그는 자신의 급진적인 주장을 정치권이 받아들이지 않자 1995년 "일본은 거세된 환관의 나라"라는 말과 함께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1999년 도쿄도지사에 당선, 행정가로 변신한 이시하라는 디젤차량 배기가스 규제강화, 금융기관에 대한 세제신설 등을 의욕적으로 추진해 인기를 끌었다. 반면 그의 인기의 이면에는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거침없이 내뱉는 좌충우돌적인 언변술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번에는 13년 6개월간 수행해온 지사직을 버리고 신당창당과 함께 정계에 복귀하겠다고 발표, 세간을 놀라게 했다. 지사직을 걸고 관철하겠다던 도쿄 최대의 수산시장 쓰키지(築地)시장 이전과 2020년 도쿄 올림픽 유치는 이미 안전에 없는 듯 했다.
두 극우 정치인의 정계 등장은 한국 중국 등 아시아 주변국과의 마찰과 관련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이런 긴장관계를 조성하는 데 이들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배경이 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 이시하라 지사는 "어려운 시절 매춘은 이익이 되는 장사"라고 했다. 그는 또 도쿄도의 업무와 무관한 센카쿠 열도 매입을 추진했다. 이는 일본 정부의 센카쿠 국유화를 부추기는 도화선이 됐고, 중국과 최악의 관계로 이어졌다. 주변국과의 긴장관계가 지속되자 자민당은 차기 중의원 선거에서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극우성향의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판단, 아베를 새로운 총재로 선출하기에 이르렀다.
예기치 못한 두 정치인들은 벌써부터 강경발언과 행동으로 주변국가를 자극하고 있다. 아베 총재는 이달 2차대전 A급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고, 이시하라 지사는 국회에 진출하면 센카쿠에 등대와 정박시설을 건설, 실효지배를 강화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주변국과의 마찰이 일본 정치는 물론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그들이 한창 활약하던 시절과는 사정이 다르다. 그들에게 안중에도 없던 중국은 이미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중국 내 일본 제품 불매운동만으로도 일본 경제를 휘청거리게 할 정도다. 일본에 30년 뒤졌다던 한국이 머지 않아 일본경제를 추월할 것이라는 보고서가 일본 내에서도 작성되고 있다.
아베 총재와 이시하라 지사는 과거 일본 정치인이 발표한 과거사 반성 관련 담화를 모두 수정하고, 전쟁을 금하는 평화헌법을 고치겠다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곧 일본의 신용추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두 노장 정치인의 정치 재개를 바라보는 일본인의 시각도 제각각일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일본인이 그들에게서 기대하는 것은 무책임한 막말과 세계의 현실을 외면한 공약이 아니라 연륜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포용정치임을 알아야 한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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