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가 또 당선되면 직원들을 해고하겠다."
미국 최대 타임쉐어 리조트(휴가시설 공동사용) 업체인 웨스트게이트 리조트의 최고경영자(CEO) 데이비드 시걸(77)은 최근 직원들에게 이런 이메일을 보냈다. 오바마 대통령이 4년 더 집권하면 사업환경이 나빠지고 세금이 늘어나기 때문에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게 이메일의 골자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말로 피해갔지만, 직원들에게 이 이메일은 "밋 롬니(공화당 대선 후보)에게 투표하라"는 뜻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대통령 선거일(11월6일)을 목전에 둔 미국에서 수천~수만명을 고용하는 일부 대기업 CEO들이 직원들에게 특정 후보에 표를 몰아주라며 유무형의 압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26일 보도했다.
정부 규제를 싫어하고 작은 정부를 선호하는 기업인들의 특성상 경영진의 선거운동은 주로 민주당 후보인 오바마 대통령에게 표를 주지 말라는 쪽으로 진행된다. 경영진은 노동계가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도 롬니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려고 압박하고 있다.
종업원 3만명을 거느린 제지업체 조지아 퍼시픽은 직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현 정부의) 사상 초유의 규제 때문에 사업이 힘들어졌다"며 "(오바마가 당선되면) 유가폭등 및 물가상승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생산설비 제조사인 라이트 하이트, 정보기술(IT) 업체인 ASG 소프트웨어 솔루션, 유니폼 제조업체 신타스 역시 비슷한 내용을 담은 CEO 명의의 편지를 직원들에게 발송했다.
이런 편지를 받은 직원들은 심리적인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조지아 퍼시픽의 한 직원은 "이메일 때문에 일하는 중에는 오바마 지지 배지를 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진의 이런 행위가 현행법을 위반하는지에 대해서는 찬반 논란이 뜨겁다. 미국 최대 노조조직인 산별노조총연맹(AFL-CIO)은 경영진의 특정 후보 지지 강요는 현행법의 한계를 넘어선 불법행위일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 출신의 공화당원인 브래들리 스미스 캐피털대 교수는 "특정인을 해고한다고 말한 게 아니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미국은 기업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선거자금을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해 왔지만 2010년 특정후보에 대해 법인에게 개인과 같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이런 행위를 허용한 이후 경영진의 선거운동은 합법화했다.
하지만 경영진이 해고 운운하며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노골적으로 직원들의 후보자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까지 합법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느냐는 지적이 잇따른다. 유진 볼크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경영진이 직원들에게 후보의 호불호를 말하는 것은 수정헌법 제1조(표현의 자유)의 테두리 안에서 가능하다"면서도 "하지만 특정 후보를 찍으면 해고한다고 말할 경우 수정헌법 제1조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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