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윌 파트. 파더 홀드 온 투 댓 도어(I'll fart. Father hold on to that door." (방귀 낄게요. 아버지 문 꼭 잡고 있어요.)
26일 서울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일성여중고의 '영어 말하기 대회'. 방귀쟁이 며느리가 도둑을 쫓아내는 내용의 설화를 영어연극으로 준비한 고등학교 1학년 3반 'farting lady(방귀쟁이 며느리)'팀의 주인공 송석순(55)씨는 난생처음 무대에 올라 적잖이 긴장했는지 마치 국어책 읽듯이 외운 영어 대사를 읊었다. 송씨가 과장된 몸짓으로 방귀 끼는 시늉을 하는 것과 동시에 '뿡뿡뿡'효과음이 터져 나오자 700여 관객들은 박장대소했다. 송씨는 5분 남짓한 공연 시간 동안 외운 15문장을 실수 없이 소화했다. 두 달간 모르는 단어 외우고, 스마트폰에 문장을 녹음하며 연습한 덕분이었다. 참가한 15개팀 중 반 동료 5명과 함께 최우수상을 차지한 송씨는 "2년 전부터 영어를 공부한 보람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만 나온 송씨도 늘 배움에 목말라하다 어린 시절 배움의 기회를 놓친 중ㆍ장년 여성들을 위한 학교 일성여중고에 2010년 입학했다. 그런데 송씨가 공부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따로 있다.
2002년부터 학교 입학 전까지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서 입양 갈 아이들을 돌보는 위탁모 봉사 때문이다. 그 동안 서울 화곡동 자택에서 입양이 예정된 19명의 아이들을 짧게는 4개월에서 1년까지 키우다 미국, 노르웨이 등으로 18명(1명은 국내)을 입양 보낸 이후에 영어 등을 배우는 아이들과 더 이상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던 것. 송씨는 2002년 미국으로 입양 보낸 A(10)양이 보고 싶다며 2007년 한국을 찾았을 때를 잊지 못한다. 그는 "아이가 '마미'라고 불러 정말 반가웠지만 '하우 아 유(how are you)?'라는 짧은 인사말 밖에 못한 채 A양을 부둥켜 안고 울었다"며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옆에 있던 통역사의 힘을 빌어 대화하는 게 답답했다"고 회상했다.
송씨는 "아이들을 입양 보낼 때 양부모에게 아이 특징이나 주의점을 설명해주고, 고국을 찾는 아이들과 자유자재로 대화하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영어실력이 괄목상대해진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2007년 미국 보스턴으로 입양 보낸 B(6)군이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water, please(물 좀 주세요)', 'it's hot, be careful(뜨거우니까 조심해)' 등 간단한 말을 알아들어 송씨 본인도 놀랐다.
송씨는 "얼마 전에는 지하철 역에서 외국인이 'excuse me, can you help me?'라며 역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말이 마치 나한테 하는 말처럼 귀에 속속 들어와 외국인이 전혀 두렵지 않다"며 "더욱 열심히 공부해 아이들이 오면 함께 여행 다니면서 평범한 모자ㆍ모녀지간 처럼 스스럼 없이 대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