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평창 동계올림픽유치에 참여하면서 유럽과 북미의 여러 도시들, 예컨대 뮌헨이나 밴쿠버 등 지구상에서 살기 좋다는 도시들을 돌아본 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서울올림픽에 앞서 아테네, 파리, 로마, 몬트리올 등 올림픽도시들을 두루 돌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숙제까지 살펴보았었다. 그 평가결과에 관계없이 우리는 정말 겁 없이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 문화도시들과 경쟁해 당당한 승리를 따내곤 했다. 이러한 정신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유전자라고 할 만한 '겁 모르는 무한도전'의 표징이라고 할 만하다.
이처럼 '라인강의 기적'을 무색하게 한 '한강의 기적' 그 연장선에서 이번에는 인천 송도국제도시가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유치에 성공했다는 희소식이 날아왔다. 이는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단발성 이벤트보다 더 뜻있는 일일수도 있다. 더구나 유엔지원아래 한 해에 1,000억 달러가 넘는 사업을 벌인다고 하니 세계은행이상의 수퍼급 국제기구임에 틀림없다.
그 동안 2014년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아 혼선을 빚고 있는 데다 송도 경제자유구역의 썰렁한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던 터에 GCF유치가 그 활로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이러한 유치경쟁에서의 승리 이전에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은 우리가 미처 모르는 사이에 놀랄 만큼 높아졌다. 지난 해 G20 정상회의를 지켜본 세계 언론들이 감탄했듯이 우리의 치밀한 외교와 조직능력은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를 넘어섰으며 지난 8월 런던 하계올림픽 성과가 말해주듯 완전한 톱 레벨의 G5에까지 올랐으니 세계열강과 겨루어 주눅들 이유가 전혀 없다.
이번 GCF비밀투표에서 송도가 독일 본과 스위스 제네바를 따돌렸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국력신장이 큰 작용을 했다고 보아야 한다. 이처럼 기후와 에너지라는 지구촌 미래과제를 풀어 가는데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된다. 또 하나 기분 좋은 일은 그동안 외교무대에서 곧잘 우리의 발목을 잡곤 했던 중국과 일본이 모처럼 힘을 모아 지원했다는 점이다. 이를 계기로 평화로운 동북아시대를 열어갈 '베세토 협력라인'을 구축하는 방안을 모색해볼 만하다.
세계는 지금 놀란 토끼처럼 휘둥그레 진 눈으로 우리를 바라볼 것이다. 세계 제일이라는 평가를 받은 지 오랜 인천국제공항에 처음 들어서는 외국인들의 반응도 그러하려니와 K팝 열풍에 이은 강남스타일 돌풍의 진원을 살피며 한국인의 놀라운 문화적 저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할 것이다. 아프리카 난민을 돕는 구원의 손길, 동남아시아 오지에 학교를 지어주는 자선행렬을 보면서 6ㆍ25참전국 용사들은 남다른 보람을 느낄 것이다. 빈곤의 바닥을 딛고 일어선 이 모든 현상이 반세기 안에 이루어진 기적임을 그들이 인지하고 있을 터다.
어떤 주역학자나 점성술사들의 말을 빌리면 어떤 알 수 없는 우주의 기운이 한반도에 모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를 국운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것이 땅의 기(氣)든 또는 사람의 맥(脈)이든, 때는 늘 오지 않는다는 진리를 새겨야 한다.
천시지리인화(天時地利人和)라는 맹자의 왕도론은 아무리 천지의 이익이 있다 해도 인화 곧 '사람의 통합'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정신적 결속과 협력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화합의 걸림돌인 선거열병과 사회분열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찾아가야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이 생전에 남긴 말씀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다. "문화의 힘으로 세계를 감동시키는 나라를 만들자" 최근엔 어느 외국 언론이 평하기를 "한국은 스포츠의 혼이 국민들의 가슴에 새겨진 나라"라고 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새로운 미래를 펼쳐가는 이 시대의 키워드는 오늘의 선거판에서 보는 대립과 반목을 극복하는 통합정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는 저마다의 정파적 이해를 초월하여 선진국민의 지혜를 모아야 할 시대과제이기도 하다.
이태영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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