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이다. 스웨덴의 한 정신병원에서 스튜어 베르그월(62)은 치료사에게 "만약 내가 누군가를 죽였다면"이라고 입을 뗐다. 그 순간 그는 1980년대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공포에 떨게 한 '스웨덴의 한니발 렉터(의 연쇄살인마)'가 됐다. 검찰은 그를 1980~90년대 스웨덴과 노르웨이 일대에서 일어난 30건의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했다.
30건의 연쇄살인
"학교에서 나오는 아이가 눈에 띄더군요. 차에 태우고 수풀이 우거진 곳에서 아이의 옷을 벗기고 성폭행했어요. 아이가 계속 울어서 당황했어요. 목을 졸라 죽인 후 그의 사체를 잘랐어요. 손가락을 베어서 먹고, 아이의 머리는 축구공처럼 찼어요."
92년 그가 밝힌 80년 11월 요한 아스플란드(11) 납치ㆍ살해 사건의 전말이다. 그는 자백을 하기 전 이름을 토머스 퀵으로 바꿨다. 자백은 계속됐다. "85년에는 오슬로에서 한 여성을 성폭행했고, 죽였어요."(그리 스트로비크 사건), "예전에 피테오에 우연찮게 들렀다가 캠핑 온 아이를 봤어요. 네덜란드에서 온 커플과 함께 캠핑장에 있길래 다가가서 말을 걸었어요.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76년 찰스 젤마노비츠 사건)
검찰은 94년 그를 위험인물로 간주해 정신병원에 구금했고, 4년 후 테레스 요한네센(9)을 성폭행, 살해한 혐의로 기소했다. 99년에는 4건의 살인 혐의가 더 추가됐다. 2001년 그는 총 8건의 살인 용의자가 됐다.
증거는 없었다. 검찰은 주로 자백에 근거해 그를 기소했다. 검찰조사에서 그의 지문이나 DNA, 범행 도구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증인도 없었다. 토머스 올슨 변호사는 "법정에서 베르그월이 사건과 틀린 정황을 말해도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았다"며 "원하는 진실을 말할 때까지 그를 심문했다"고 비난했다. 일부에서는 그가 알리바이를 완벽하게 만든 범인이라고 주장했다.
마약과 동성애
베르그월의 유년기는 불우했다. 스웨덴의 소도시 팔룬에서 태어나 오순절교회를 믿는 부모님 아래에서 엄격하게 자랐다. 14세 때 동성애자임을 깨닫고 방황이 시작됐다. 마약에도 손댔다. 19세 때 남학생을 성추행하다 고발됐고, 애인을 찌르려 하다 붙잡혔다. 그는 부랑아였다. 90년 마약값을 마련하러 산타클로스 복장으로 은행 강도를 하다 정신병원에 갇혔다. 그의 치료사는 "그는 늘 중요한 사람처럼 대접받기를 원했고, 주목받고 싶어했다"고 전했다. 베르그월 스스로도 "나는 너무 외로웠다. 모든 것이 시작되기 전까지"라고 했다.
거짓 자백
그는 92년 첫 자백을 하면서 점점 자백에 매료됐다. 그는 "잔인한 폭력현장에 있었다고 하면, 그리고 그 사건이 끔찍하고 나쁠수록 사람들의 관심을 더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또 "나는 무리에 속하고 싶었고, 관심을 받고 싶었다"고 자백 이유를 밝혔다. 자백하려고 인터넷을 뒤졌고, 신문기사와 경찰조서를 연구했다. 그는 "정신병원 내 도서관에서 신문의 마이크로필름까지 찾아내 사건을 연구했다"며 "시신의 위치, 지리적 특징, 피해자의 인상착의까지 알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조사관과 치료사, 조사를 받는 다른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을 주의깊게 듣기만 해도 웬만큼 사건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06년 사건을 담당했던 고란 람베르츠 판사는 "범인만 알 수 있는 사실들을 그가 말했다"며 "그의 자백은 진짜였다"고 반박했다.
천재 살인마, 마약에 찌든 정신병자
그는 2001년 갑작스레 자백을 멈췄다. 이름도 다시 본명을 썼다. 경찰조사도 거부했다. 이유는 마약이었다. 그는 정신병원에 감금돼 있는 동안 시간당 약 20㎎의 다이아제팜(진정제)을 투약해왔다. 전문가들은 이 정도의 양은 치사량에 가깝다고 혀를 내둘렀다. 병원 도서관 대출기록에 브렛 이스튼 엘리스의 등이 있었다. 2001년 병원장이 바뀌면서 진정제 투약이 제한됐고, 베르그월은 7년간 침묵했다.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은 것은 2008년 다큐멘터리 제작자 한스 라스탐이 그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만들기 시작하면서였다. 라스탐은 그를 만나 무죄를 확신했다. 라스탐은 법의학적인 증거 없이 베르그월의 진술만을 토대로 재판한 사법부를 비난했다. 라스탐은 집필을 끝낸 뒤 간암으로 1월 숨졌다. 책은 사후에 출간됐다. 결국 스웨덴 항소법원은 지난달 8건의 혐의 중 5건에 대해 무혐의를 선고했다. 나머지 3건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20일 영국 언론 최초로 그를 인터뷰한 일간 가디언이 병원에서 나가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계속 앞으로 걷고 싶습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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