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회 종교ㆍ문화예술인 바둑축제가 지난 20일 충남 서산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서광사에서 열렸다. 기독교, 불교, 천주교를 대표하는 종교인과 문화ㆍ예술계의 바둑 애호가 40명이 선수로 참가했다. 특히 종교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바둑 대회를 연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목사와 신부가 법당에 앉아 바둑판을 마주하고 수담을 나누는 광경은 신선했다. 바둑을 통한 화합과 소통을 주제로 한 대회이기에 종교 구분 없이 10명씩 뒤섞여 '자비', '사랑', '평화', '예술' 등 4개팀으로 나눠 기력별 치수제로 총 3라운드의 대국을 벌였다. 김인 9단과 유건재 8단이 기꺼이 심사위원으로 수고했고 이완섭 서산시장과 성완종(선진통일당) 의원을 비롯해 많은 관전자들이 찾아와 성원했다. 승부를 가리는 게 무의미한 대회였지만 공식 우승은 20승 1무 9패를 기록한 사랑팀이 차지했고 4등까지 주어지는 상금 전액은 조계종단의 자비나눔단체인 '아름다운 동행'에 기부했다.
종교인 바둑축제를 기획하고 주최한 서광사 주지 도신스님은 "종교인들부터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갈등에서 벗어나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취지에서 대회를 준비했다"며 " 이번이 처음이라 준비 기간이 짧아 여러 가지 미진한 점이 많았지만 내년에는 더 많은 성직자들을 참여시겠다"고 아쉬움과 의욕을 보였다. 앨범을 6장이나 낸 '노래하는 스님'으로 유명한 도신스님은 아마 6단 실력의 고수다. 서광사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바둑템플스테이와 '각수삼매배'라는 바둑 대회를 여는 사찰이다.
진주 하재동성당의 이재열 신부는 우리나라에서 바둑이 가장 센 신부님으로 알려져 있다. 짱짱한 아마 5단인 그는 왕년의 아마바둑 맹장 이해범 7단과 박성균 아마국수와의 지도 대국을 가뿐하게 승리로 마무리했다. 그는 "우리 교구에도 바둑을 좋아하는 신부님들이 많은데 극구 사양하셔서 함께 참여하지 못했다"며 "내년에는 반드시 모셔 오겠다. 종교계서 처음으로 이런 자리가 마련돼 반갑다"고 말했다.
기독교에 바둑 선교회가 있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경기도 용인 한우리선교원의 윤여탁 집사가 이끄는 바둑 선교회는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 아직 바둑이 널리 보급되지 않은 나라에서 선교 활동을 하며 바둑을 알리고 있다. 윤씨는 "불교나 천주교에 비해 기독교계의 바둑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2007년 바둑 선교회를 만들 때도 장로들의 반대가 무척 심했다"고 전했다. 그는 "하지만 노래나 춤도 선교활동으로 수용하면서 바둑은 안 된다는 건 편견"이라며 "바둑은 신학대학에서 교양 과목으로도 다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바둑으로 세상을 바꿀 순 없다. 하지만 계층간 세대간 소통의 매개체 역할은 할 수 있다. 그래서 바둑의 별칭이 손으로 대화를 나눈다는 수담(手談)이다. 이 날 김인 9단의 축사에는 최초로 열린 종교예술인 바둑대회의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무슨 일이든지 처음은 힘들지만 한 번 물꼬를 트면 다음부터는 한결 수월해진다. 종교나 종파가 달라도 바둑 한 판이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듯, 이 대회를 통해 나눔과 사랑, 자비의 길이 널리 열리기를 기원한다."
정용진 사이버오로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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