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황학동 중앙시장에선 일대'사건'이 벌어진다. 50~60대 여성 120여명이 서울 도심의 대표적인 재래시장 한복판에서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재현한다. 거대 군무 행렬로 시장 안은 공연장으로 바뀔 것 같다. 또 시장 내 가게마다 가지각색의 간판들이 얼굴을 내민다. 가게 주인들의 얼굴이 들어간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간판들이 공개되는 것이다.
5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황학 중앙시장은 한 때 동대문, 남대문 시장과 함께 서울의 3대 시장으로 꼽혔다. 여기에 지역주민과 상인, 예술가들이 한 마음이 되어 진행하는 '황학동 별곡, 시장의 소리가 열린 날'(황학동 별곡) 무대가 마련된다.
'황학동 별곡' 프로젝트를 진두 지휘하는 사람은 서울문화재단의 총괄매니저 김진호(39), 기획자 조예인(31)씨다. 두 사람을 26일 신당창작아케이드에서 만났다.
김씨는 "3년여 전부터 비어있는 상점들을 예술가들에게 작업실로 대여해주는 공간이 바로 중앙시장"이라며 "상인들과 자주 접촉하게 되면서 재래시장 활성화 기획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당창작아케이드는 중앙시장 입구의 지하공간이다. 400여m에 이르는 곳에 10여 곳의 횟집이 영업 중이다. 그런데 들어서는 순간부터 상인들과 예술가들의 공존이 시작된다. 회 센터의 끝자락에 마련된 작가들의 작업실은 마치 작품 전시회를 연 듯 완성된 작품들이 즐비하다. 조씨는 "지하상가는 처음엔 형편없이 지저분한 공간이었지만, 상인과 예술가들이 손잡고 인테리어를 바꿔주는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깔끔한 명소로 변신할 수 있었다"고 했다.
중앙시장의 변신을 주도할 간판 달기 작업인 '얼굴걸고 판다'도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 "간판은 인터넷을 통해 참여 예술가들을 공모했는데 80여명이 참여했고 모두 재능기부를 했어요. 그 중 80%의 작가들은 직접 상인들을 찾아가 스케치도 하고 이야기를 들으며 간판에 고스란히 담아냈죠. 간판이라기 보다는 예술 작품인 셈입니다."(김씨) "가게 주인이 자신의 얼굴을 걸고 질 좋은 물건을 판매한다는 것은 그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예술가들에겐 대중과 소통하는 장이 마련된 것이고요."(조씨)
상인들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힘을 보탰다. 5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자발적으로 행사에 참여했다. 조씨는 "어르신들이 재래시장과 지역 활성화를 먼저 생각했다는 사실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했다.
'황학동 별곡'엔 다문화 가정과 함께하는 '다문화 찻집', 신당창작아케이드 입주작가 전시회 및 정글을 테마로 한 사운드아트 전시 등 특색 있는 프로그램들도 기다리고 있다.
"중앙시장을 떠나는 상인들이 점점 늘고 있어요. 고객들이 줄면서 운영이 힘들기 때문이죠. 하지만 상인들이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똘똘 뭉친 건 시장의 부활을 원하기 때문 아닐까요? 재래시장도 변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재래시장의 대변신을 기획한 두 사람의 바람이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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