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다시 읽고 싶은 책] 죽음 앞둔 역사학자가 청년들에 보내는 정치적 유언 "신자유주의는 잘못된 길"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다시 읽고 싶은 책] 죽음 앞둔 역사학자가 청년들에 보내는 정치적 유언 "신자유주의는 잘못된 길"

입력
2012.10.26 11:31
0 0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이런 말로 시작하는 는 죽음을 앞둔 한 지식인이 한 시대를 비판하며 좌절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도록 조언하는 내용의 책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프니까 청춘'일 미국과 유럽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쓰여진 책은 그러나 어줍잖은 아포리즘으로 청년들을 위로하는 것은 아니다.

20세기 유럽사를 전공한 저명한 역사학자인 저자 토니 주트는 20세기 중후반 복지국가의 퇴조와 신자유주의 등장 등 미국과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두루 되짚으며 젊은이들의 곤경이 어디서에서 왔는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절실한 목소리로 웅변한다. 경제적 양극화와 정치 불신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정치혁신과 복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던지는 함의가 적지 않다.

책이 집필된 과정부터 자못 숙연하다. 2차 대전 이후 유럽사를 다룬 (2005)로세계적 명성을 얻은 토니 주트는 지식인으로서 전성기를 구가할 시점인 2008년 루게릭병을 진단 받았다. 책은 의료장비가 없으면 숨조차 쉴 수 없는 상태에서 힘겹게 구술한 내용을 정리한 그의 마지막 저서다. 2010년 2월 책을 낸 토니 주트는 그 해 8월 숨을 거뒀다. 국내에는 지난해 2월 번역서가 나왔다.

책이 다루는 테마는 전후 냉전시대와 복지국가, 신좌파 물결, 80년대 공산권의 붕괴, 신자유주의 등장으로 인한 탈규제와 민영화 등 전후의 수많은 논쟁적 지점이다. 정치 이념과 현실정책, 거시와 미시 등을 두루 살피며 문제점을 비판하고 진로를 모색하는 저자의 통찰력이 곳곳에서 빛난다.

전례 없는 안정과 번영, 평등의 확산을 이끌었던 전후 복지국가 체제가 70년대 들어 위기에 직면한 배경을 설명하는 대목만 봐도 숙고할 부분이 적지 않다. 공공부문 비대화와 비효율, 재정적자 등으로 위기를 맞은 복지국가 체제의 딜레마가 경제적 모순에 따른 것이기보다 정치적 소심증이 낳은 결과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예컨대 오십줄에 들면 든든한 연금을 챙겨 은퇴하는 프랑스 철도 노동자의 연금제도가 과잉 복지의 대표 사례로 꼽히지만 이 제도가 만들어진 당시 철도노동자는 워낙 고된 노동에 시달려 50대 초반에 은퇴할 수 밖에 없었고 대부분 10년도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테제베(TGV) 운전사들은 근무 여건이 매우 좋아져 50대에 은퇴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일이 됐지만, 정치인들이 인기하락을 두려워해 이런 문제를 적절하게 조정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복지제도 자체를 해체시키며 시장에 대한 맹종이나 탈규제, 민영화로 나아간 신자유주의는 완전히 잘못된 길이었다며 저자는 분개한다. 지금의 돈벌이에 대한 강박, 불안의 삶, 극심한 빈부격차, 정부와 공공부문에 대한 불신 등이 바로 최근 30년간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전환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를 이끈 시카고 학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들로 나치의 지배를 피해 망명한 하이에크 등 극소수 오스트리아 출신 학자들을 꼽는데, 그들이 나치의 교훈을 오해했다고 저자는 말했다. 자신들의 경험을 과잉 해석해 국가의 시장 개입 자체를 전체주의로 인도하는 길로 오독했다는 것이다. 80년대 보수의 귀환에는 60년대 신좌파의 나르시시즘이 일조했다는 설명도 눈여겨볼만하다. 복지국가의 혜택을 받았으면서도 신좌파나 신자유주의자 모두 "사적 자유에 대한 열광과 공적 구속에 대한 짜증"의 정서를 공유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결국 젊은이들에게 환기시키고자 하는 것은 복지국가와 사회민주주의의 유산인 국가의 공공적 역할 및 공동체의 신뢰와 연대, 공공성 증진이다. 죽음을 눈 앞에 둔 학자가 20세기 시장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복지와 정치적 민주주의를 동시에 추구했던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와 철학, 경제관, 정치관을 집약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