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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10월 26일] 문화예술 후원의 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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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10월 26일] 문화예술 후원의 내력

입력
2012.10.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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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및 미술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가을 이맘때 어김없이 떠오르고 잔잔한 기대감에 부풀어 내닫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이다. 큰길 가에서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 전시회를 알리는 붓글씨를 보며 들어서는 그곳. 간송 전형필(1906~62) 선생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해 모으고 지킨 우리의 고미술품이 집대성돼 있는 곳. 그 유명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등 귀하고 가치 높은 문화유산을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봄과 가을, 꼭 일 년에 두 차례씩 20여 일 간 무료 전시회를 열어 손님을 맞이하는 곳. 세간의 흘러 다니는 말 중에는 그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우리나라 문화유산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국립중앙박물관을 넘어선다는 얘기도 있다. 또 1938년 국내 최초 근대식 사립미술관으로 지어진 고택을 그대로 쓰다 보니 우려되는 소장품 관리 문제, 안전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 개보수작업을 하겠다고 했지만 옛 것을 원형대로 보존한다는 취지에서 정중히 거절했다는 말도 있다. 풍문은 풍문일 뿐이지만, 그런 말이 함축하는 뜻은 그만큼 간송미술관이 대단하고 중요한 곳이라는 말이다.

새삼, 우리가 지금 간송미술관을 두고 감탄하게 되는 것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커다란 위기의 시대를 관통하며 지켜낸 전형필 선생의 문화예술을 향한 애호와 후원의 실천력이다. 또한 그런 선생의 깊은 뜻과 결기, 헌신의 태도와 나눔의 마음을 온전히 이어받아 유형의 문화재뿐만 아니라 무형의 정신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오늘 이곳에서 지키려는 그 후예들의 삶이다. 그것은 단지 부로 형성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며, 학습을 통해서 이어질 수 있는 덕목도 아니다. 어쨌든 덕분에 우리는 평소에는 현실의 구차함에 쫓겨 각박하게 굴다가도 봄 꽃 필 무렵, 은행잎 질 무렵 성북동의 그 작은 고택 전시장에 가 조선시대 진경산수화를 감상하거나 중국 명, 청대 회화를 통해 추사의 예술세계를 가늠해보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여하한 어려움이 없는 한 우리의 다음 세대 또한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화와 예술이란 매우 섬세하면서도 경험 현실에 밀착돼 있는 것이고 세태의 변화란 무자비한 것이어서, 그것들이 지금은 우리 곁에 있지만 언제고 사라질 위기에 처할지 모른다. 문화예술에 대한 꾸준하고 진지한 애호와 겸손한 후원이 필요한 이유가 거기 있다.

며칠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이 기관을 후원하는 국립중앙박물관회의 젊은 회원들이 주축이 된 '후원 행사의 밤'이 열렸다. 회원인 지인의 초대로 간 그 행사의 참석자 다수는 재계의 인사들이거나 각자의 영역에서 일정한 권위를 가진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사는 평소 박물관이 인포메이션 제공과 매표 용도로 쓰는 로비를 잠시 무대로 바꾼 곳에서 진행됐다. 또 행사는 으레 그런 자리에 있기 마련인 해당 주최 측의 공치사나 장황한 연설 없이, 재능기부를 한 문화예술인들의 공연을 즐기고 마지막으로 참석자들에게 박물관을 위한 기부를 독려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세칭 '사회 지도층 인사'라고 불리는 이들의 태도는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예술을 후원하는 일 앞에서 꽤 소박했고 진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역사, 전통문화유산, 문화예술 활동을 지키고 지금 현재의 우리뿐만 아니라 미래에 올 이들과 그것을 공유하기 위해 자신의 기부행위를 충분히 즐길 줄 알았다.

그 자리에서 내가 간송의 마음과 간송미술관의 지난 전시들을 떠올렸던 것은 바로 그 즐거움 때문이다. 크고 거창한 의미의 맥락에서 보면, 간송의 업적은 우국충정에 따라 시대와 현실의 부침으로부터 문화유산들을 수호했다는 데 있다. 이는 정말로 맞고 중요한 바다. 그래도 간송과 그 후예들이 자신의 실천을 이어가면서 느꼈을 즐거움 또한 컸을 법 하다. 무엇인가를 지지하고 함께하는 즐거움이 아마 한 세기 전 간송과 오늘 국립중앙박물관 후원인들을 잇는 내력일 것이다.

강수미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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