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벌어진 특허소송에서 연패를 거듭하던 삼성전자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예비판정에 기대를 걸었던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주변 상황이 워낙 유리하게 돌아갔다. ITC 판정 하루 전날 네덜란드 헤이그 법원은 삼성전자 제품이 애플의 멀티터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결했고 지난 주 영국 항소법원도 삼성전자 갤럭시탭이 애플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사실상 미국에서만 애플의 특허공세가 먹히고 있는 형국인 데다 지난 8월 배심원 평결에서 삼성전자가 특허를 침해했다고 판결한 애플의 '바운스 백'에 대해 미국 특허청이 '잠정 무효'판정을 내린 일까지 발생했다.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역풍도 있었다. 미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 배심원 평결 이후 미국의 '자국기업 감싸기'에 대한 비난은 생각보다 컸다. 더욱이 이번 예비판정의 주체인 ITC는 상무부 산하 정부기구다. 법원의 판결이 피고와 원고인 두 회사간의 대결이라면, ITC는 정부가 특정제품에 대해 수입금지여부를 판단하는 곳이다.
ITC는 지난 달 애플 제품이 삼성전자의 특허를 하나도 침해하지 않았다고 예비 판결한 터여서, 삼성전자 제품에 대해서만 특허침해 결정을 내릴 경우 보호무역주의 논란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 있었다. ITC가 이번 판정을 앞두고 돌연 발표일정을 엿새 연기한 것을 두고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부담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 이유였다.
하지만 '혹시나' 했던 기대는 '역시나'로 끝났다. ITC는 삼성전자가 애플의 6개 특허 중 4개를 침해했다는, 예상보다 더 강력한 판정을 내놨다. 업계 관계자는 "ITC가 이번에 인정한 휴리스틱스 기술은 지난해 호주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라며 "미국만 애플의 특허를 인정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는 것과 무관하게 생각할 수 없는 결과"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과연 어떤 정부가 선거를 코 앞두고 외국기업에 유리한 판결을 내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도 이날 "ITC는 대통령 직속기관으로서 어떠한 결정을 할 때 법적인 측면만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며 "특허 침해 등의 불공정 무역 관행일 경우 미국 시장을 보호하는 것이 ITC의 일"이라고 전했다.
이번에 특허침해 예비판정이 난 제품들은 삼성전자의 구형제품들이다. 내년 2월25일 전에 내려질 최종판정에서 특허침해결론이 나더라도 매출에 큰 타격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애플은 이를 토대로 특허공세를 더 강화할 것으로 보여, 삼성전자로선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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