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분단 시절 서독과 국제사회 유력 정치인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던 옛 서독 수도 본의 레스토랑 마터누스가 25일 영업을 중단한다고 시사주간 슈피겔이 보도했다. 슈피겔은 이 소식을 인터넷 영문판 머릿기사로 소개하며 "잊혀져가는 전후 시대를 비추는 마지막 불빛이 꺼지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마터누스가 문을 닫는 이유는 주인 에르빈 드레셔 마터누스가 은퇴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마터누스 영업 중단은 개인적인 일이지만 분단 시절 본의 위상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서독 고위 관리들은 이 곳에 모여 여러 정책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했다. 초대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부터 마지막 총리 헬무트 콜까지 역대 서독 정상은 모두 마터누스의 단골이었다.
이 곳은 알려지지 않은 외교무대이기도 했다. 해리 트루먼부터 로널드 레이건까지 서독을 방문한 미 대통령 5명이 이 곳을 찾았고,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도 이 곳 손님이었다. 한스 디트리히 겐셔 전 서독 외무장관은 "공식 모임 이후 사적인 공간이 필요할 때 마터누스를 추천했다"며 "정치인들의 응접실과 같은 곳이었다"고 회고했다.
외국 정상들의 에피소드도 많다. 1990년대 초 러시아에서 보드카 금주 캠페인이 한창일 때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이 곳에서 보드카를 주문했다가 기자가 들어오자 그를 피해 식탁 밑으로 몸을 숨겼다.
마터누스의 영업 중단은 99년 베를린에 수도 자리를 내 준 본의 화려한 시절이 빛을 잃어 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유명 방송인 프리드리히 노보트니는 "독일의 기초를 닦고 민주주의를 키워 낸 본과 관련한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탄식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