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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10월 26일] 민주주의와 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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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10월 26일] 민주주의와 민도

입력
2012.10.2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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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새 우리와 부쩍 가까워진 나라가 인도다. 우리 기업의 진출이 활발하고 여행객들의 발길도 잦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라는 명성에 걸맞은 풍부한 문화자원, 여기에다 신흥 경제국으로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게 인도를 가깝게 만든 요인이 아닌가 한다. 지금은 중국이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지만, 조만간 인도가 중국을 대체하는 새로운 거대 시장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많다.

최근 인도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16년 전 처음 간 뒤로 이번이 두번째인데 갈 때마다 재미있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남한 면적의 30배가 넘는 거대한 땅덩어리에 인구는 12억 명이 넘고, 힌두어와 영어가 공용어이지만 실제로는 30개 가까운 공식 언어가 쓰인다. 종교와 인종도 다양하다. 법적으로는 없어졌다지만 출생 때부터 신분을 가르는 카스트 제도도 엄존한다.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계층이 거대한 공동체를 이루면서도 독재나 좌우이념 대립을 겪지 않고 살아가는 나라는 지구상에 흔치 않다. 인도를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인도의 민주주의는 조금 다르다. 국민이 선거로 지도자를 뽑고, 그 지도자가 대의정치를 하는 건 맞지만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인도의 민주주의는 나쁘게 말하면 방임이나 무질서에 가깝다. 가장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하는 것이 인도의 도로다. 승용차와 트럭, 릭샤(오토바이를 개조한 3륜차), 자전거, 오토바이 등 온갖 교통수단이 뒤섞여 서로 먼저 가려고 아귀다툼을 하고 여기에 우마차, 사람들까지 무시로 도로를 넘나들며 정신을 쏙 빼놓는다. 인도(印度)에는 인도(人道)가 없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이 와중에 인도인들이 신성시하는 소떼까지 출현하면 도로는 그야말로 난장판이 된다. 왜 차선을 안 지키느냐는 물음에 “한 차선에 가급적 많은 차들이 다닐 수 있다면 그만큼 도로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고 한 현지 운전사의 말이 생각난다. 서울의 운전문화가 삭막하다지만 인도에 비하면 족탈불급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노상방뇨를 하고, 교통사고를 내면 뺑소니가 상책이라는 이 나라가 핵무기를 갖고 있고, 자체 기술로 로켓과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군사ㆍ우주 강국이라고 생각하면 아이러니를 느낀다.

얼마 전 외신에 화장실 청소를 업으로 하는 60대 인도 여성의 이야기가 실렸다. 인도 북부에 사는 이 여성은 매일 동네를 돌며 양동이에 다른 사람의 배설물을 담아 동네 밖에 버린다. 인도의 화장실 환경이 워낙 열악하다보니 생긴 직업이다. 인도에는 화장실이 없는 집이 태반이다. 집 한 켠 커튼으로 가린 작은 공간의 시멘트 바닥에서 볼 일을 본다. 인도의 유아 사망률이 높은 데는 이런 불결한 화장실 환경도 한 몫 한다. 외신이 지적한 것은 화장실 청소라는 직업이 이미 20여년 전에 법으로 금지됐고, 정부 발표로는 수세식 화장실이 많이 보급됐다는데도 이런 직업이 왜 여전히 존재하는가를 묻기 위함이다. 인도 정부는 10여 년간 화장실을 지어주는 공중위생사업에 적지 않은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실제 화장실 보급률은 20%대에 머물러 있다. 이 신문에서 한 인도인은 “정부 관료들이 화장실 보급 실태를 허위로 보고하고 예산을 중간에서 가로챘다”고 말했다.

인도의 부패와 관료주의는 심각하다. 인도 국가신용이 정크등급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경제위기가 심각한데는 정치인과 관료의 극심한 부패 탓이 크다. 인도가 자랑하는 컨설팅기업 TCS의 해외영업총괄본부장 시다르탄은 “부패가 언제쯤 없어질 것 같으냐”는 질문에 “다음 세대쯤? 우리 세대엔 어렵다고 본다”고 고백했다.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라는 인도가 이렇게 된 것은 지도자의 자질이나 도덕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겠지만, 제대로 된 지도자를 뽑고 이를 엄중히 감시하려는 유권자 의식이 부재한 이유가 훨씬 크다. 우리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껍데기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인도를 통해 다시 한번 느낀다.

황유석 국제부 부장대우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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