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공고가 떴다. '심뇌혈관질환 종합 대책'의 하나로 정부 지원의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를 선정한다는 것. 생명을 위협하는 뇌졸중, 심근경색증 같은 심뇌혈관 질환을 전국적으로 제대로 관리하고 지역 간 의료 서비스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의료계의 반응, 웬일인지 썰렁하다. 일부 병원이나 의료진 사이에서는 "복지부의 당초 취지가 이미 퇴색된 것 아니냐"며 선정 과정이나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병원 인프라가 서울, 경기 지역에 집중돼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2006년 처음 선정된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는 강원과 대구ㆍ경북, 제주, 2009년 두 번째로 선정된 센터는 충북과 광주ㆍ전남, 경남, 지난해 세 번째 땐 대전ㆍ충남, 전북, 부산ㆍ울산 지역 병원 각 1곳에 돌아갔다. 그런데 복지부는 이번에 수도권인 인천과 경기 지역 병원을 각 1곳씩 추가로 선정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기존 선정된 9개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는 설치비 약 60억원, 운영비 약 12억원씩을 지원 받았다. 이번 공고로 추가될 센터는 이보다 적은 설치비 15억원, 운영비 9억원을 받게 된다. 또 이번 공고에선 기존 센터와 선정 기준이 달라졌다. 기존 센터를 선정할 땐 지방 대학 병원이 대상이었으나, 이번엔 대학 병원 중 상급 종합 병원과 심뇌혈관질환 전문 병원(복지부 지정)으로 제한했다.
그러나 많은 의료인들은 지원 금액과 수혜 기준을 바꿔가면서까지 당초 취지와 맞지 않는 수도권의 병원을 굳이 더 선정하겠다는 정책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번 공고에 선정 후보로 명시돼 있는 병원 가운데는 바뀐 자격 요건에 맞지 않는 병원이 2곳이나 들어 있다. 그 중 한 병원은 해당 지역의 다른 정부 지원 센터를 거의 독점한 상태다. 의료계가 고개를 갸우뚱할 만하다.
심뇌혈관질환 분야는 의료계가 주목하는 이른바 'CCC'에 속한다. CCC란 환자가 계속 늘고 의술도 발전하며 병원에 많은 수익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심혈관(Cardiovascular)ㆍ 뇌혈관(Cerebrovascular) 질환과 암(Cancer)을 말한다. 한 의료계 인사는 "CCC는 정부가 굳이 지원하지 않아도 병원들이 앞다퉈 경쟁하려는 분야"라며 "수도권 대학 병원들은 이미 CCC에 집중하고 있어 의료의 질 차이가 크지 않고, 지금도 대부분 환자가 3시간 이내에 접근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수도권 심뇌혈관질환센터 지원 예산을 좀더 공공 목적에 알맞은 방향으로 쓸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복지부 당국자는 "처음 센터를 선정할 때부터 수도권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도중에 예산이 줄면서 선정 시기가 늦어졌을 뿐"이라며 "(수도권 병원이)낮 환자를 보는데 충분하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야간에는 전문 인력 부족 등 여전히 개선돼야 할 점이 있다"고 추가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번 공고에 대해 의료계 의견이 분분한 건 알지만, 나름대로 절차에 따라 시행하고 있는 정부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어떤 정책이든 사회 구성원 각자의 이해 관계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 하물며 국민 건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보건 정책임에랴. 다양한 의견을 적극 수용하려는 관계 당국의 자세는 그래서 더욱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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