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모 사립대 경제학과 4학년 이모(27)씨는 오후 3시가 다가오면 온 신경이 스마트폰에 집중된다. 증권시장이 마감되기 전 한번이라도 더 주식 매매를 해 얼마간의 수익이라도 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 취업이 안 된 탓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이씨. 하지만 부모에게 미리 받아둔 대학원 등록금 500만원의 절반 가까이는 이미 주식 매매로 날렸다. 이씨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이 있어 어디서든 실시간 거래가 가능하다"며 "장 마감을 앞두고 변동성이 커져 리스크(위험)가 크지만 타이밍만 잘 잡으면 큰 돈을 딸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사이에서 '주식 폐인'이 급격히 늘고 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터치 한 두 번으로 주식 매매가 가능해지면서 수업 시간에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 현재 국내에서 영업 중인 증권사 61곳 중 스마트폰으로 주식 거래를 할 수 있는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갖춘 곳은 31곳이나 된다.
서울 K대 경영학부 3학년 하모(25)씨는 "모든 기억이 주가를 통해 떠오른다"고 했다. 모 게임개발회사 주식이 7만3,000원으로 치솟았던 7월 어느 날 현장 실습 수업이 있었고, 모 식품회사 주식이 2만1,000원에서 2만7,000원으로 급등한 날 중간고사를 봤다는 등 어느 회사 주식이 얼마일 때 무슨 일이 있었다는 식이다. 하씨는 "음악을 한참 듣던 10대 때는 음악을 떠올리면 추억이 생각났는데, 지금은 주식매매 앱을 항상 켜두고 생활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K대 경영대에는 최근 증권투자 학회만 50개가 넘을 정도로 많아졌다. 주식은 남 얘기처럼 여기던 인문대ㆍ공대생까지 최근 주식에 빠져들고 있다. 하씨는 "스마트폰 주식 앱이 나온 이후 확실히 새로 주식을 시작하는 친구들도 크게 늘었다" 며 "주식시장 개장시간에는 아예 도서관에 앉아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고 있는 친구들도 많다"고 말했다.
문제는 매매 방식이 시중에 떠도는 풍문이나 매매 동향만 보고 초단타 매매에 나서는 데 있다. 주식을 투자가 아닌 도박하듯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증권투자 학회에 들면서 주식 매매를 시작한 서울 G대 산업공학과 3학년 김모(25)씨는 단 몇 달 만에 1년치 학비와 생활비 1,500만원을 모두 날렸다. 테마주를 하다 손실을 보자 초단타 매매로 이를 만회하려 했고, 이도 안돼 선물ㆍ옵션까지 덤벼든 게 화근이다. 선물옵션은 손실을 입을 경우 피해도 그만큼 크다. 김씨는 "단 몇 분 사이에 10% 가까이 오르내리는 주가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매매 화면을 터치하게 되더라"며 "'한 방'에 성공한 선배가 비싼 술을 쏘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학생은 자기 개발에 투자할 시간도 모자란 시기인데, 주식 폐인이 되는 상황은 사회 전체로도 이롭지 못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현자 서울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활용 가능한 스마트폰 특성은 학생들이 주식투자에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며 "여기에 주식을 통해 짧은 시간에 돈을 벌 수 있다 심리가 일종의 보상 작용을 해 기존 스마트폰 중독보다 더 심각한 중독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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