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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 네트워크' 활용 신흥 시장 훑는 日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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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 네트워크' 활용 신흥 시장 훑는 日기업들

입력
2012.10.2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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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쇼샤의 힘’

일본 종합상사인 이토추는 지난해 5월 이토추광물자원개발을 설립, 남아프리카공화국 광산의 백금개발사업에 진출했다. 이곳은 연간 20만톤의 백금이 산출되는 세계 최대 광산으로, 사업권 인수전에 ‘차이나 머니’를 앞세운 중국이 저돌적으로 뛰어들었지만 결국 승리는 이토추에게 돌아갔다.

역시 일본 종합상사인 마루베니는 지난 6월 미국 3위의 곡물 유통 대기업인 가빌론을 56억 달러(6조3,733억원)에 인수했다. 이 M&A로 마루베니는 미국 카길 등 4대 메이저가 지배하는 세계 곡물시장에서 일약 ‘큰 손’으로 떠오르게 됐다.

치열하게 전개되는 세계 자원ㆍ곡물전쟁의 중심에 일본 종합상사들이 있다. ‘쇼샤(商社)’라고 불리는 일본 종합상사들은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갈수록 그 세를 넓혀가고 있다.

일본 종합상사는 업계 1위인 미쓰비시상사를 비롯해, 미쓰이물산, 스미토모상사, 이토추상사, 마루베니상사 등이 ‘빅 5’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광산 유전 등을 선점한 탓에, 글로벌 원자재가격이 급등하면서 오히려 더 막대한 이익을 누리고 있다. 유럽재정위기가 전 세계를 덮쳤던 지난해 이들 5개 종합상사의 순이익은 무려 1조6,114억엔(23조원)에 달했다. 소니, 파나소닉, 샤프 등 일본 대표 가전 3사가 순손실만 7,500억엔을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소니나 도요타 같은 간판기업들이 부진하다고 해서 일본기업들이 와해됐다고 보면 큰 오산이다. 일본기업의 정수는 바로 종합상사들이며 이들은 불황기에도 어마어마한 순익을 창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쓰비시는 연간 7,000만톤의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는데 이는 일본 전체 수입량의 41%에 달한다. 미쓰이는 지난 2009년~2010년 철광석 가격이 140% 급등하면서 금속자원 분야의 수익도 덩달아 166% 증가했다. 스미토모는 일본 종합상사 최초로 TV 홈쇼핑 분야를 개척, 현재 ‘주피터 쇼핑채널’ 지분의 99%를 보유하고 있다. 이토추는 섬유와 식품 등 소비재 분야에서, 마루베니는 식량부문에서 일본 전체 곡물 수입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 종합상사들이 처음부터 잘 나갔던 건 아니다. 원래는 제조업체들의 수출을 대행해주는 것이 주된 사업이었는데, 1990년대 이후 일본경제가 장기불황에 빠지면서 채산성이 악화된 제조업체들이 독자적 해외영업망을 구축하거나 수출대행 수수료를 크게 낮춤에 따라 그 입지는 크게 좁아졌다. ‘상사무용론’ ‘상사의 겨울’ 이란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일본 종합상사들은 이 때부터 방향을 ‘무역중개회사’에서 ‘종합투자회사’로 선회했다. 제조업체들은 엔고 때문에 애를 먹었지만, 종합상사는 엔고를 오히려 해외투자의 기회로 활용한 것이다.

자원ㆍ에너지가 주된 투자대상이었지만, 수익이 발생하는 곳이라면 ‘라면에서 미사일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실제로 미쓰이는 지난해 4월 여성교도소가 발주한 재소자들을 위한 네일 아티스트 양성사업에 진출하기도 했으며, 스미토모는 미국 현지 대형 슈퍼에서 개, 고양이의 벼룩과 진드기 구제제를 ‘애니멀 헬스’라는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다. 특히 신흥시장에 주목했는데,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일본 종합상사들이 세계불황에도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는 이유는 중국 러시아 브라질 인도는 물론 아프리카에서도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 세계에 구축해 놓은 ‘거미줄 네트워크’도 경쟁력의 핵심원천. 일본 종합상사들의 해외 주재원 수는 1,000여명이 넘는다. 이토추는 지난 2007년부터 뉴욕 런던 싱가포르 상하이에 ‘세계인재개발센터’를 설치 운영할 정도다. 이런 엄청난 인력 파견과 육성, 대규모 현지투자를 앞세워 각국 정부는 물론, 현지 기업과 방대하고도 두터운 네트워크를 형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해외 프로젝트 등을 블랙홀처럼 빨아 들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종합상사들은 단순히 경제적 투자를 넘어 정치적 영향력도 막대하며 실제로 일본 정부를 도와 준 외교관적 역할도 하는 것으로 안다”며 “종합상사 네트워크 자체가 일본의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호성 수석연구원은 “일본 종합상사들이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자원가격 상승을 배경으로 화려하게 부상하고 있다”며 “후발주자인 우리나라 종합상사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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